사과를 깎으며, 눈으로는 집안 이곳저곳을 살핀다. 무주반딧불이 사과는 시각적으로 봐도 참 크다. 오랜만에 지인가족과 함께 식사와 차를 마시고 받아온 사과다. 나는 다양한 과일을 좋아한다. 어느 하나의 과일에 빠지면 박스로 과일을 사 두고 먹었던 기억도 많다. 한동안은 단감을 좋아하여 박스로 사 두었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삶에 주름살이 하나 둘 더하기를 하면서부터는 다양한 과일과 야채를 함께 즐긴다. 물론, 양도 많이 줄었다. 입맛이 달라진 것일까? 사과를 먹어도 예전의 그 맛이 아니다. 그 맛을 찾는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예전에 이랬다고 지금도 그래야 한다는 원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예쁘게 사과가 깎아졌다.

“어머, 신기해라. 요즘 사과에도 벌레가 있네. 참, 보기 드문 일인디?”

“어디? 그러게 말이야, 무농약 사과인가? 농약을 얼마나 뿌려대는디? 설마 했더니, 진짜 벌레네. 신기하다.”

“ 옛 어른들 말씀이 벌레 먹은 과일이 맛있는 거라잖아?”

깎아 둔 사과 껍질을 보니, 썩은 부분이 제법 크다. 잠시, 썩은 부분과 벌레를 도려내지 말까? 고민하다가 과감하게 도려냈다. 초롱초롱 8개의 눈동자가 벌레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들여다본다.

그 순간 떠오른 어린 시절의 겨울밤은 우연이었을까? 바람이 거세게 초가집을 내리칠 때면 금불을 든든하게 지피신 아버지과수원 일을 해 주시고 얻어 오신 상처 가득한 사과를 깎아서 자식들 입을 가득 채워 주셨다.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동장군의 겨울을 그렇게 상처 난 사과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상처가 덜한 사과를 우리에게 정성껏 깎아주시던 아버지와 따끈따끈했던 아랫목이 그립다. 손수 나무를 산에서 짊어지셨던 그 어깨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벌레 먹고, 상처 난 사과 한 조각에 서로 웃으며 꿈나라에 갔던 그 시절의 아버지가 지금의 나이다.

<하편에 계속>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