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단발령을 추억하며

어떤 사람은 온 몸을 던져 나라를 사랑하는 반면에 그들은 머리카락만 자르고 목을 자른 것처럼 큰소리친다. 역사적으로 변화는 아래로부터 일어나지 위로부터는 일어나지 않는다. 3.1독립운동도, 4.19혁명도, 5.18민주화운동도, 6.10민주항쟁도 모두가 힘없는 사람들이 온몸을 내던져 자신들의 생명을 바쳐 이룩했다. 하지만 그들이 상투 자르는 것을 반대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으켜 선동한 것은 죄 없는 수많은 국민만 희생시켰지 오히려 일제강점을 빠르게 했을 뿐이었다. 지금 우리는 단발령을 내리지 않아도 머리를 자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시위들이 있다. 물론 사람들의 요구가 다양하고 그에 따라 집단들의 이해갈등이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의견을 표출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버스노조파업, LH본사유치, 신공항 유치, 과학벨트, 국공립대 법인화, 반값 등록금, 제주도 강정마을, 억압받는 노동자들, 4대강 사업으로 신음하는 모든 생명까지 한반도의 반쪽은 그야말로 집회와 시위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내년의 양대 선거를 앞두고 갈수록 더 심화될 것이다. 자신들의 선거판에 유리하도록 잠재한 갈등들이 표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각 정당들은 그들대로 이슈를 만들어 판세를 유지하거나 바꾸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 사이에서 부대껴야 하는 이름 없는 국민들의 신음소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시위의 최종점에서 어떤 경우는 온몸으로 목숨을 걸고 투쟁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삭발투쟁으로 마무리하거나 잠시 시일을 갖고 다른 이목거리를 찾기 위해 법정소송으로 세간의 관심을 돌려버린다. 물론 그 모든 비용들은 고스란히 말 없는, 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턴 세금덩어리들이다. 그들의 돈으로, 그들의 월급으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 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단지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국민을 위한다며 그들의 속사정을 다 안듯이 맘대로 한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말만 풍성하고 말 없는 사람들은 권리도 없는 허드레 쓰레기 취급을 당한다.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해있는지 그들만 모르는 것-알면서도 단지 보여주기 위한 방송용 같다.
온갖 출세의 길을 걷다 세상일에 못마땅하여 20여년을 침묵하였다. 환갑이 넘어 단발령에 반대하고 칠순이 넘을 때까지 항일척사운동을 위해 전라도에서 의병들을 모집하여 “왜적이 아닌 동족과 싸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그의 말 ‘나의 목을 자를 수는 있으나, 나의 두발을 자를 수 없다’가 있다. 이 시대에는 그들의 용어가 되어 두발을 자르고 목을 자른 것처럼 광고를 하고 다닌다. 그것도 동족과 싸우며-싸운다는 표현은 좀 그렇다-그들도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만의 단합대회가 끝나고 목을 자른 것과 같은 삭발까지 했는데 성취하지 못한 것은 국민들이 동조하지 않아서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들은 충성도에 따라 다음 선거에 공천장을 남발할 것이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축제를 이어갈 것이고 말 없는 국민은 더욱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지금도 지난 19세기말의 의병쯤으로 국민들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위로부터 변화를 꽤하는 것은 그들의 정책에 속도를 부추길 뿐이며 국민에게는 더욱 부담을 줄 뿐이다.

유 봉 관(시인,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