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차를 바꾸란다. 정기검사마저도 불합격을 받아 재검을 받아야 하는 차를 끌고 다닌다. 더구나 붓으로 도색을 하고 몇 년 전에는 사무소 스티커까지 붙이고 다녔다. 그러니 가족들의 위신이 떨어질 것이며 한 편으로는 부끄러울 것이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낯 내놓고 다니며 ‘번역’이라는 것을 하는 당사자는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트럭에 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편하다. 지금이야 한 달에 한두 번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다른 차를 끌고 다닌다고 해도 부담이 될 것이며 그것이 전부 생활의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다. 
  일을 해도 걱정, 일을 해놓고도 걱정이었다. 철자 하나가 틀려 메콩 강을 세 번이나 서류가 오락가락 한 적도 있으며 일주일을 밤잠 안자고 해서 보내도 엉터리라며 입금이 안 된 경우도 있다. 지인의 말마따나 번역이 직업이 될 수 있느냐고 말한 것처럼 그런 일마저도 많지 않다. 그러니 생계를 위해서 막노동을 해야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번역처럼 머리 쓰는 일이 아니니 마치 나들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번역은 죽으나 사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어울려서 하니 즐거웠다. 아무리 쉽고 편한 일도 혼자 하면 고역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도 둘이 하면 놀이이고 셋 이상이 하면 축제다. 막노동을 하는 것은 고역을 하다 축제에 나선 기분이었다.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이 이 트럭이다.
  어떤 고객은 “왜 트럭을 몰고 다니냐?” 믿을 수 없다며 몇 번을 의심하고 다른 고객은 트럭을 보고 맡길 수 없다고 돌아선 경우도 있다. 될 수 있으면 다른 곳에 주차하고 고객을 만나러 가지만 부득이하게 눈에 띄는 경우에는 할 수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좋은 차를 타는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말을 믿는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집보다 차를 먼저 사며 그 아름다운 것이 진리인 것 마냥 그것을 믿고 쫓는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이츠의 ‘아름다움은 진리고, 진리는 아름답다-이것이/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아는, 알 필요가 있는 전부이다.’를 믿고 따르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아름다움에는 그런 낭만주의 시대의 아름다움이 없다. 광고의 홍수에 빠져 메이커의 차와 메이커의 성형과 메이커의 옷을 입는다.
  개성이 없는 아름다움은 없다. 자기만의 색깔이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공장에서 나온 상품과 같다. 개성은 자신감의 표출이며 그만큼 자신만의 고통을 감내한 향기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누런 소들이 사막을 횡단하여 가면 그것은 단지 풍경일 뿐이지만 그들 사이에 붉은 소 한 마리가 함께 가면 그것이 바로 개성이자 아름다움이다. 지금은 그 붉은 소가 먹이를 가져오는 시대이다.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사는 세상이다. 그래서 많은 누런 소와 같은 이들이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스타에게 열광하며 스스로의 삶을 헛되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 자리에서 붉은 소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다고 본다.
  트럭은 번역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어느 경우에든 어울리느냐 않느냐를 구분하는 기준은 없다. 더구나 이런 말들이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일 수도 있다. 넉넉한 살림이면서 이런 행태를 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현실에서 살아가려는 호구책으로 하는 것이니 자기억지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해서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동안 고락을 같이해온 트럭과 번역가와의 관계이다. 번역은 부가가치가 없는 일이다.  
                 
유 봉 관 (시인,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