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탈북자 교육을 마치고 하나원에서 하루 만에 찾아온 새터민이 있었다. 중국에 있는 남편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지리도 아무것도 몰라 택시만 타고 다니는 것 같아 나머지 일을 보는데 도와주기로 했다. 시내의 맞은편에 있는 집에 들려 나머지 서류를 챙기고 근처 동사무소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마침 수리중이었다. 그런데 큰 소리로 왜 못하게 되었느냐며 직원들을 나무라듯이 따지는 것이다. 수리중이라고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하는 것인지 미리 고쳐놨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밖으로 나와 설명을 하고 그렇게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하나원에서 그렇게 배웠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친절해야 하고 주민들을 위해 잘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세요. 남한이 탈북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허술하게 보여도 이 사회는 철저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더구나 북한에서도 한국전쟁에서 남한 군인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며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다고 배웠을 겁니다. 우리도 또한 그렇게 배웠어요. 지금 동사무소에 있는 분들 중에 부모들이나 형제가 죽은 경우가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북한 말씨를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그러니 제발 조용조용히 말하세요. 알아들었는지 그 다음부터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야말로 에어컨도 안 되는 차를 끌고 뙤약볕에 출입국사무소로 우체국으로 몇 바퀴를 돌았다.
  북한에서 중학교 영어교사였으며 매스컴에서 나오듯이 정말 하루에 한 끼 먹기 힘들단다. 북한을 나온 지 6년 만에 안 해본 일이 없이 하면서 중국에서 숨어 살다가 태국을 걸쳐 들어왔다는 것이다. 손을 보니 거칠었고 북한의 남편과는 이혼하고 중국에서 만난 남편을 위한 서류이며 수시로 그 사람에게 전화해서 확인하는 모양이다. 이따금 식당이라며 전화가 오지만 어느 곳은 백만 원을 준다, 어느 곳은 백이십만 원을 준다고 한다. 영세민으로 생활비마저도 부족하니 내일이라도 당장 출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통화의 전화를 엿들으니 압록 강변 북한에 두고 온 딸의 전화였으며 딸을 데려오기 위해 돈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점심시간도 지나고 맛있는 밥을 사주려고 하니 길가의 찐빵과 옥수수만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난감하였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인데 제국에서 온 사람은 이 나라의 국민들이 요깃거리로나 먹는 것을 주식으로 먹고 있다는 것에 너무 충격이었다. 그렇게 오후가 한참이 지나서 끝났으며 집에까지 태워다주었는데 고맙다는 말도 없이 휙 가버렸다. 아주 당연한 듯이 말이다. 너무 힘들었지만 통일이라는 말이 얼마나 먼 나라 말인지를 알게 되었다. 더구나 한 나라의 제국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역사라는 것이 국민의 핍박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국민은 지위와 명예가 있다. 무대 위의 광대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회피하기 위한 용어가 아니다.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긴 것들은 모두가 허구의 집에 지은 것들이다. 주변의 추종하는 몇 사람의 장단에 맞춰 광대노릇을 했을 뿐이다. 공연은 끝나도 관객은 있듯이 국민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아마 광대들은 노릇이 끝나고 허무감에 뒤풀이를 갈 것이다. 말없는 국민, 이 세상살이에서 이름도 없이 죽은 수많은 국민이 있기에 이 나라는 지금 존재하고 있다.                                         

유봉관 · 시인 ·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