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

높고 맑은 가을 하늘 바라보다가 눈이 부셔

부끄러워 고개 숙인 노오란 벼의 가냘픈 외침에

재잘거리는 참새의 야무진 합창이 서늘한 바람 되어 

찰칵, 찰칵, 눈에 담기, 하나 두울 추억이 쌓인다

따갑고 눈부신 가을 햇살 보내기 싫어 

반딧불이 같은 태양 민낯이 낯설어

그리운 마음 풍성한 밤송이로 가득 채워버리고

찰칵, 눈에 담기, 추억 메모리에 저장한다

송글송글 부끄러워 붉디붉게 물들어 서러운 

한 그루 새초롬한 대추나무는 사랑이 주렁주렁

살가운 미소에 소소한 일상은 달착지근 무너지고

찰칵, 눈에 담기, 밥상이 화려하다      

찰칵, 찰칵, 찰칵, 바보같은 가을을 눈에 담으면

높다란 하늘 넓은 들판 만큼, 배터리 부족에  

배부른 생각들은 하늘에 일곱색깔 무지개 감질나고

가을엔 언제나 부족하다 늘 그렇듯이(박여범 시 - 가을은 언제나 부족하다)

 

가을을 ‘찰칵’, ‘찰칵’ 가을을 눈에 담다 보면, 배터리가 언제나 부족하다. 부족한 가을은 정말 짧다. 4계절 중 봄과 가을이 유난히 짧게 느껴진다. 붉게 익어가는 사과와 대추, 통통통 튼실한 밤을 바라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이렇게 풍성한 결실을 우리에게 선물하는 가을이 너무 짧다. 그래서 내년을 기약하는 것이 너무나 힘겹다.

배부른 생각이 맑은 가을 하늘에 일곱 색깔 무지개로 손짓한다. 노오란 벼와 산들산들 함께하는 코스모스를 눈에 담으며, 한적한 시골길을 말없이 걸어본다. 주어진 시간을 쪼개어 사랑하는 가족이나 공동체와 가까운 시골길로 달려가자. 거기에서 만난 수많은 자연과 사람들이 새로운 추억으로 남아 ‘언제나 부족한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어린 시절 추억으로 가득한 ‘나의 가을 주머니’에 오늘은 무엇을 가득 채워야 할지, 고민할 이유가 없다. 눈앞에 펼쳐진 경이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기’만 하면 된다. 계절은 저마다 특성을 가진다. 가을도 그 하나다. ‘짧지만 길게 즐길’ 줄 아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박여범 /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