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토끼와 유비쿼터스 인간

토끼는 아이의 꿈이었다. 한 마리의 토끼가 자라 수많은 새끼를 낳고 그 새끼를 키워 송아지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른들은 토끼를 잡아서 잔치를 벌이고 말았다. 어릴 적 너무나 가난한 아이는 그렇게 해질녘에 논두렁을 다니며 토끼풀을 뜯으며 가졌던 회망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토끼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다. 닭장이 있었고 그 위에 토끼장이 있었으며 오물거리며 먹이를 먹는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고 한 없이 귀여웠다. 이 세상에 자신보다도 더 연약한 동물이 있다는 것에 무한한 호기심을 가졌다. 더구나 환약처럼 둥그런 똥들이 떨어진 자리에는 쇠똥구리가 굴리고 다니고 저만큼 닭들은 해집고 벌레들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지독한 오줌냄새였다. 지금은 그 냄새마저도 그리움으로 남는다.
토끼해에 맞춰 토끼를 키운다고 삼례장에서 장날에 암수 두 마리를 3만원에 사다 시골집에 키운다. 지난 겨울부터 벌써 3번을 실패하고 이번에는 3마리를 낳아서 주먹만 하게 클 때까지 키우다 죽었으니 5개월은 넘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새끼를 낳은 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틀 만에 가서 먹이를 줄려고 하니 저만큼 핏덩이가 널려있다. 아마도 수놈이 밟아 죽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며칠 후에 자세히 보니 어미의 배가 불룩하여 이번에는 낳은 날에 암수를 갈라놓은 예정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훌쩍 지나서 낳은 모양이라고 조심스럽게 암수를 갈라놓고 왔는데 이번에도 죽었다. 아마도 혹한에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조용한 집에 사람이 오가는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 죽은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바로 암수를 붙여놓았더니 이거 사람보다도 더 열심히 방아질을 하고 수놈은 넋 떨어지듯 나가 떨어져버리는 것이다. 정말 동물도 신기했으며 그것에 관한한 시도 때도 없는 것이 사람과 같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 수놈은 가림 막의 작은 틈으로 암컷만 쳐다본다. 시종 그렇게 보며 점점 야위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최대한의 배려를 했다. 암컷의 모성애는 대단했다. 자신의 가슴이 훤하게 보일정도로 털을 뽑아 이번 꽃샘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이 바빠 며칠을 못 갔더니 덩그러니 새끼들이 죽어있다. 더 이상 새끼를 키울 수 없는 환경이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새끼를 낳았다. 날씨도 따뜻하고 풀들도 지천으로 있으니 조슴스럽게 먹이를 주며 보살폈다. 주변에서 몇 마리 낳았느냐며 구경 좀 하자고 해도 절대 사절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렇게 10여일이 커서 보송보송 예쁘게 엄마 품에서 나온 것을 봤는데 그만 지난 겨울에 씌워놓은 햇빛 가림을 치우지 않아서인지 칸막이의 고열로 두 마리가 죽었고 며칠 후에 가보니 마지막 한 마리마저 차갑게 굳어있었다.
추위와 더위를 오갈 수 있도록 흉통을 만들어 들여놓았다. 사각형 칸막이에서 토끼는 아무런 생기가 없더니 출구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인지 힘을 발휘하여 흙을 파내고 엄청난 활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토끼는 시각보다는 수염의 촉각으로 방향을 알고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연약하기가 말도 할 수 없이 약하다. 더구나 먹이는 아무리 많이 가져다 놓아도 조금씩밖에 안 먹는다. 계속해서 조금씩 먹고 연약한 몸으로 온갖 궁리를 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필수일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밤 같지만 뱀은 아니며 그래서 토끼는 물이 흐르듯이 세상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토끼는 지혜의 동물이라고도 하고 기회주의자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별주부전의 거북이등에 타고 용궁에 가서 간을 육지에 놓고 왔으니 바로 가져오겠다며 다시 데려달라고 한 위기대처능력은 토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토끼는 임기응변이 뛰어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위기에 처했을 때 처리할 수 있는 임기응변의 능력이다. 예전에는 변심이 심하여 신용이 없다고 하지만 적자생존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에 그것은 바로 장점이고 시대를 살아가는 능력인 것이다.
토끼의 성질을 닮은 사람이 지금은 유리하다. 여성적인 심성을 가져야 한다. 남성적인 고지식과 억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장애가 도리 뿐이다. 하지만 또 다른 남성적인 담대함과 여성직인 유동성을 함께 갖는 것이 좋다. 그것이 바로 유비쿼터스 인간이다. 요즈음은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약하다. 하지만 한 가지에 정통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잘한다. 다시 말하면 예전에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운동을 못하거나 음악이나 미술을 못하는 등 다른 과목에서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공부 잘하는 사람이 운동도, 음악도, 미술도 잘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그런 국민이 많을수록 그 지역은 발전할 것이고 국가는 부강해질 것이며 세계 속의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위기대처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고 쉽게 말해 상황판단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너무 토끼 같은 사람이 된다면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잉것이 현대인의 슬픔이라면 슬픔일 것이다.

유봉관 · 시인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