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엽제

한반도 남쪽이 술렁이고 있다. 고엽제 때문이다. 경상북도 칠곡의 미군 기지에서 다량의 고엽제를 몰래 매립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엽제 문제가 점점 이상하게 번지고 있다. 고엽제 매립사건이 칠곡의 미군 기지 캠프 캐럴에서만 있었던 게 아닌 모양이다. 동두천과 평택이 의심 지역으로 떠오르더니 이제는 부천 쪽에도 의심의 눈총이 겨누어 지고 있다. 고엽제 드럼통들을 묻었던 때가 1978년이라니 30년도 훨씬 더 지난 옛적의 일이다. 그러니 땅속의 드럼통들이 온전할 리가 없다. 토양과 지하수가 고엽제의 다이옥신으로 오염됐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오늘날 고엽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엽제를 모르는 사람은 베트남 전쟁을 모르는 사람이라야 한다. 고엽제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악의 물질이다. 고엽제의 다이옥신은 청산가리쯤은 비교도 안될 만큼 독약 중의 독약이다. 관계 전문가의 그 같은 보도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고엽제는 글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고엽제가 전쟁 당사국도 아닌 평화로운 한국 땅에 몰래 파묻혀 있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고엽제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서만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통탄할 일이다.
고엽제를 가리켜 인류가 만들어낸 최악의 물질이라고 하는 데는 그 이유가 없지 않다. 고엽제는 정글 지대에 숨어있는 베트콩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미국이 만들어낸 화학무기이다. 숲을 온전히 고사시켜 베트콩들이 암약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은 비행기를 이용해서 고엽제를 공중 살포하기도 하고 다른 우방국의 지상군을 시켜서 살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난 수십 년간 보도된 대로 끔찍한 재앙의 연속이다. 고엽제에 직접 오염된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살포자들도 불구자가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던 것이다. 심지어 전후에 태어난 아이들도 고엽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공상과학 속의 외계인처럼 기괴한 얼굴로 태어난 아이도 있고, 네 발 달린 짐승처럼 기어야 하는 아이도 있다. 아예 하체가 없거나 얼굴이 문드러진 채로 태어난 아이도 있다. 손이라는 게 팔도 없이 어깨 부위에 나뭇잎처럼 매달려 있는 아이도 있다.
월남에서 돌아온 장병들 중에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죽은 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고엽제 악몽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내에는 고엽제 후유증 판정을 받은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이들도 많다. 그리고 그 자녀들 중에는 까닭도 없이 이상한 병을 앓고 있는 사례도 있다. 그런데 그 무서운 고엽제가 월남 땅도 아닌 한국 땅의 지하에 버젓이 숨어 있었다니 끔찍하다. 문제를 일으킨 칠곡의 그 캠프 캐럴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아곡리 마을의 비극을 심상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간암으로 폐암으로 감상샘암으로 사망자들이 잇달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망자만도 스무 명이 넘고 있다는 보도이다. 사정이 그러니 신경마비 환자며 피부병 환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응해서 월남전에 참전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임에도 월맹에게 밀린 것은 이유가 없지 않다. 한국이 월남전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얻은 것이 많다지만 잃은 것도 많다. 지금은 이 같은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과거 공화당 정부 때는 어림없었다. 이게 당대 현실과 역사 현실의 차이다. 그러나 아무리 겁이 많은 사람이라도 지금의 고엽제 매립 사건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미국에게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한국에는 일제시대의 친일파를 매도하면서도 현재 자신이 친미파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야릇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이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