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꽃(國花)은 예로부터 그 겨레의 사랑을 오래도록 받아오는 사이 자연스럽게 나라꽃으로 정해지는가 하면 나라의 법률로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한국은 전자에 속한다. 참으로 선택의 자유였다.
천년의 노송도 썩어서 마지막엔 흙 되는데(松樹千年終是朽) 단 하루의 무궁화는 영화를 누리네(槿花一日自爲榮)
이것은 당나라 백낙천이 지은 시로 무엇보다도 여기선 삶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장식한 걸 찬미한 것 같다. 그러기에 유종의 미는 일상에서도 교훈으로 삼는다. 더불어 순간으로 영원을 산다는 여운도 내포되어 있기에 그 울림도 자연 깊을 수밖에.
어쨌든 꽃이란 인류문화와 함께 모든 사물의 아름다움을 상징한 것으로 늘 시와 그림을 표현하는 내용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따라서 나라꽃은 그 나라의 민족성과도 깊은 뿌리로 이어지게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겨레 스스로가 사랑해서 자연스럽게 정해진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터. 한편 여기서 우리는 어두웠던 역사적 고난과 운명을 같이 한 꽃이라면 깊은 관심과 사랑은 물론 적어도 제 철이면 가깝게 마주보며 그 아름다움 앞에서 역사 의식과 더불어 완상(玩賞)하는 것이 겨레의 긍지가 아니겠는가. 남의 국토를 제 땅이라고 심지어 교과서까지 앞세워 역사를 왜곡하는 현실과 다시 맞서 있다. 자랑인 것 같지만 5000년 우리 문화를 젖줄로 삼아 오늘로 이어온 나라이다.
빛나는 문화와 역사가 있는 민족은 행복하다고 했다. 어두웠던 그 날의 아픔을 한사코 저들에게만 돌려선 안된다.
토인비의 사관대로 역사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한 명언도 어찌 잊겠는가.
권력과 부귀 앞에서는 저마다 애국자 이면서 화단 한 쪽 빈자리에도 무궁화 한 그루 심는 여백 그리고 태극기 내거는 의무조차 망각한 것이라면 모름지기 우리를 슬프게 한다.
빨갛게 고운 단심(丹心)에다 꽂은 듯 꼿꼿한 꽃술은 첫눈에 마음을 부여잡는 것이 우리 국화(國花)인 무궁화일레라.
수줍은 듯 우아하면서도 다소곳한 맵시 무궁화 꽃은 병풍에서도 은은하다.
정녕 인류 역사에서 고난의 역사로 하여 거레와 함께 비운을 굽이굽이 겪었던 나라꽃이 우리 대한민국 말고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반성이 앞서야 한다. 비판 없이는 발전을 바랄 수 없는 것. 우리는 어느 때보다 오늘의 역사 의식과 더불어 문화 국민으로서 주인 의식을 바로할 일이다.
애국 지사요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한 남궁억 선생은 민중.교육과 함께 일제의 눈을 피해 무궁화 보급에 앞장섰던 나라 사랑의 열정이야말로 길이 받들어야 할 것이다. 일제는 우리의 나라꽃을 닥치는 대로 뽑아서 석유로 적셔 불태운 사실(史實)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한 때는 학교마다 무궁화 동산을 조성 교육적인 면에서도 보람된 국책으로 환영받더니 차츰 그 열기가 세월로 묻히는 것이 매우 아쉽기 이를 데 없다.
끝으로 구상(具常) 선생의 시 한 구절을 옮겨 함께 감상해 보면 어떨까.

겨레의 새벽부터
이 땅을 수놓은 꽃
겨레와 그 모진 고난을
함께 견뎌 온 꽃
곧은 절개들의 꽃
(겨레여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다:노산)

/진창선 ·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