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정 시인이 데뷔 7년 만에 첫 시집 ‘밤의 귀 낮의 입술(모악)’를 펴냈다.

활달한 화법과 다채로운 상상력을 지닌 62편의 시에는 현실을 긍정하면서도 그 그늘에 가려진 불안한 내면들이 담겨 있다. 그 세계는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끔 우연한 기회에 엿볼 수 있다. 그 찰나의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우리 속에 숨겨져 있는 꿈과 욕망의 실체를 목격할 수 있다.

‘낮의 입술이 밤의 귀를 다 열어서는/읽을 때까지/
우린 왜 자꾸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에만/깊은 우물을 파는지/
물속에 두고 온 것들이/가뭄에 모조리 뼈대를 드러낼 때까지/
입술을 끔뻑끔뻑 달싹이는 붕어처럼/‘ -밤의 귀 낮의 입술- 중에서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시에서 시인은 낯익은 듯 낯선 순간을 개성적인 언어로 포착하여 묘한 이미지의 뒤틀림을 보여준다.

 ‘낮의 입술이 밤의 귀를 다 열어서는/읽을 때까지’에 이르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귓바퀴에 다가 앉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것은 입을 벌려 말할 때 소리는 없지만, 그 깊고 어두운 입술 사이로 무성의 파장이 밀려오는 걸 목격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 순간 우리의 귀는 ‘업보’의 울음으로 울어야 할지도 모른다.

문태준 시인은 서평에서 “하기정 시인의 시집에는 신기하고 매력적인 질문들이 그득하다. 빤한 세계, 상투적인 세계를 뒤집어 ‘낯설고 위험한 세계’가 위로 솟아오르게 한다”고 했다.

하기정 시인은 197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우석대 대학원 문창과를 졸업했다. 2010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구름의 화법’이 당선됐다. 2007년 5·18문학상과 제7회 작가의 눈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정해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