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덴산부인과

김재연 원장

성적 자기결정권

일반인에게는 아직 생소한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무엇일까. 성적(性的)인 취향과 행동은 개개인이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일종의 인격권이라는 뜻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은 개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등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독자적으로 성적인 가치관을 확립하고, 이에 따라 사생활의 영역에서 자기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책임 하에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관계를 가질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성적 자기 결정권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라도 매매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이를 금지하는 법의 형태로 자기 결정권이라고 하여도 제한되기도 한다. 성문화의 변화로 사회 상규가 급격히 변화하는 하는 경우에도 법이 사회의 변화에 뒤처질 수는 있어도 언제까지 따로 갈 수는 없다.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에서 비롯한 '성적 자기결정권'은 우선 성행위 여부 및 상대방에 대한 결정의 자유를 현실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정 되어야 한다.

유교적 전통 하에 놓여 왔던 우리나라는 물론, 서양의 경우에도 성에 대한 억압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더불어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결과 부부생활에서도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의 권리를 침탈당할 경우의 가장 큰 결과적 피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과 같이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상처로 나타난다. 두려움과 함께 가장 많이 보고되는 것이 자존과 명예의 상실감이다. '부부강간'은 물론이고, '부녀' 요건에 걸려 강간죄 검토조차 되지 않는 남성에 대한 성폭행도 피해자들의 정신적 상처도 다르지 않다.

법이 강간죄로 보호하려는 대상은 여성의 정조가 아니라 성적자기결정권이며 강간죄의 피해 상에 혼인중의 부녀 즉 아내가 제외된다는 근거는 없다. “부부는 동거의 의무가 있고 동거란 스스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성관계에 응해야 한다.”는 법리적인 판단미숙으로 지금까지 성폭력피해를 당한 수많은 아내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왔다.

가부장제적인 사고가 강한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인 아내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없었으며 남편이 아닌 타인에게 성을 유린당했을 때, 정조보호 대상으로만 존재하였다. 우리사회가 성폭력가해자를 처벌함으로서 보호하고자 한 것은 여성들의 정조가 아니고 성적자기결정권이라고 하지만 피해자의 고소의사가 있어야만 가해자의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와 아내강간 처벌에 인색한 점 등 아직도 ‘정조보호’라는 시대착오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아내강간 처벌 주장에 ‘아내강간이 인정이 되면 한국 남성의 50%가 지난밤의 성폭력으로 출근도 하기 전에 교도소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여 우리를 경악하게 한 적도 있었다. 다르게 해석하면 혼인한 아내들의 반이 날마다 성폭력을 당한다는 이야기인데 아내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은 남편들의 실상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여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아내 강간의 인정은 인간의 기본권인 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성적자기결정권의 인정이며, 인권침해로 인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는 성폭력이며 이는 인권침해, 범죄라는 인식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아내강간은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법적인 처벌에 문제가 있다.”는 논리도 ‘아내강간은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부는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족을 구성하는 구성원이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가족 즉 부부 상호간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존중되는 건강한 부부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