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초연의 막을 올린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현실과 삼투압을 주고 받는다. 용질로 바꿔 놓을 수 있는 '현실을 정제한 연극'의 농도가 낮게 여겨지면, 농도가 높은 '날 것의 현실 쪽'으로 용매가 옮겨간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탈영병은 "세상은 전쟁터이고 우리 모두는 군인"이라고 울부짖었다. 11일 현실 속에서 탈영병으로 오인된, 경기 연천 최전방 육군부대의 중사는 근무지 이탈 장소에서 총기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용질의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농도가 높은 쪽으로 용매가 옮겨가는 현상이 삼투압. 액체가 용매이고 고체가 용질이다. 고체는 연극의 소재나 현실의 사건이며, 액체는 연극의 무대이자 현실을 살아가는 공간이다. 다행히 극단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현실의 중사는 11일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속 어느 군인의 모습일 수 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삶에 대한 완벽한 은유다. 3대 독자라 병역이 면제임에도 지난한 자신의 삶의 무엇인가가 달라질 것 같아 입대한 탈영병의 외침처럼 그냥 인생 자체가 전쟁터다. 

2015년 대한민국 탈영병, 1945년 일본 오키나와 조선인 가미카제,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에 식품을 납품하는 한국 업체의 직원, 2010년 대한민국 백령도 인근의 초계함 선원들. 서로 다른 시공간의 군인들이고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죽음 앞에 놓였다는 점에서 같다. 세상 자체가 이미 전장이니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 역시 겹쳐진다. 

탈영병처럼 현실을 탈출하고 싶고, 조선인 가미카제 '오카와 마사키'처럼 가족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며, '서동철'처럼 외로운 타지에서 불행히 섬뜩한 폭력에 휩쓸릴 수 있으며, 남북 관계가 점차 차가워지는 시점에 초계함 선원들처럼 언제나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극작도 맡은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은 네 가지 이야기를 저마다의 스타일로 풀어낸다. 연극의 메시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탈영병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극단의 끝으로 묵묵히 걸어간다. 가족 이야기와 일제강점기의 조선인으로서 정체성 혼란이 부각되는 조선인 가미카제 이야기는 감정적이다. 

유명한 신학 대학 인근 역의 자취방 등 2004년 김 모 선교사의 사건이 연상될 수밖에 없는 이라크 무장단체와 식품업체 직원 서동철 이야기는 뜨거움과 차가움을 오간다. 결국은 무거운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초계함 이야기는 서로 다른 분위기에서 군인들의 똑같은 대사를 반복해 들려줌으로써, 인물과 상황을 환기시킨다. 

시간 순서에 따른 연대기적인 구성이 아니다. 사건은 맥락 없이 뒤섞인다. 그런데 결국은 조각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드는 모자이크처럼 이들 사건은 '인간 이야기'로 수렴된다. 박 연출이 지난해 정부의 '검열 논란'에 섰다고 이런 극에마저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결국 연극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을 보여준다. 이야기와 내용적인 측면에서 초점을 맞춰 역사를 환기하는 건 문학이나 학술 등 서술 장르에 더 무게가 실린다. 연극은 무대 위 예술로 시간과 공간을 마음껏 뛰어넘고 이를 결국 하나로 꿰는 묘의 힘을 지니고 있다. 

박 연출의 힘 중 하나인 은유의 멋도 넘친다. 가미카제 부대를 이끄는 다카키 히데오가 들려주는, 자신의 신체 봉합술을 자랑하는 두 의사 '이러지도'와 '저러지도'의 이야기는 실제 고단한 삶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의 블랙코미디적 반영이다. 돌잔치 때 아이가 내뱉는 '빠빠' 소리가 '아빠'로 들린 초계함 병장이 지나가는 뱃고동 소리마저도 '아빠'로 들린다는 너스레는 아련하고 따듯한 뭉클함으로 다가온다. 

박상봉 무대디자이너가 모든 군인들에게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주기 위해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의 원형무대 위에 세운 또 다른 여백의 무대 역시 연극 미학이다. 인물들의 심연처럼 아득하다. 

탈영병 이원재의 절규와 오카와 마사키 김동원의 울음이 눈에 밟히지만, 특히 마음에 잔상으로 남는 건 고수희와 강지은이다. 전쟁터인 세상에서 그나마 따듯함을 느끼게 하는 인물들. 극단 골목길의 간판으로 박 연출의 작품과 재일교포인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연극에서 모성을 온몸으로 체화하는 고수희는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서도 거리의 아주머니로서 탈영병을 한껏 끌어안는다. 일본군에 입대하는 자식에게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먹여주기 위해 아픈 다리 치료도 미루는 마사키 어머니 강지은은 미군의 폭격으로 남편과 아기를 잃고 복수심에 들끓는 이라크 전사로도 무대에 오른다. 

민간 극단과 손잡고 창작 초연을 선보인는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의 올해 시즌 개막작이다. '2016년 페스티벌 도쿄'에 초청받아 10월 일본 도쿄에서도 공연한다. 27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배우 박윤희, 성노진, 오순태, 서동갑, 권태건, 이원재, 김동원, 신사랑. 조명 디자이너 김창기. 제작PD 조유림. 러닝타임 110분. 1만8000~3만원. 02-758-2150 

/정해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