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SSK(Social Science of Korea, 한국의 사회과학) 개인기록연구팀이 경북 김천 권순덕(72) 할아버지의 농민일기인 ‘아포일기’ 전 5권(1969~2000)을 완간했다.

‘아포일기’는 경북 김천 아포읍에서 태어나 70여년의 생애를 고향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권순덕(72) 할아버지가 평생을 써 내려온 일기다. 권순덕 할아버지는 SSK연구팀이 수집한 2000년까지의 일기 외에도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다.

A4 3,000매가 넘는 막대한 분량의 아포일기는 1969년부터 2000년까지의 원문 전체와 연구팀의 해제 원고 등이 수록돼있다. 할아버지가 26살인 1969년, 할아버지는 군에서 막 제대한 20대 농촌 청년의 도시를 향한 열망과 좌절부터 시작해 농업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50대 장년의 고뇌에 이르기까지 근대화 과정의 뒷면에 묻힌 한 시골 농민의 생애를 일기에 고스란히 담았다.

또한 일기 속의 권순덕 할아버지는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을 스스로 착취하면서 소작농에서 자작농으로 성장하고 농한기에는 인근 도시의 막노동꾼으로 돈을 모았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세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냈고 도시 중산층으로 성장시켰다. 

이 과정을 통해 SSK연구팀은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집중시켜 온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과 빼다 박은 듯 닮아있다고 해석했다. 돈과 출세, 성공을 위해 현재의 쾌락과 편안함을 포기하고 근면, 성실의 가치를 규범화하는 이른바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성호 연구원은 “한 세대 내에서 경험하면서 나타나는 사회경제 상황과 문화적, 윤리적 가치의 급격한 변화를 압축근대성의 주요한 측면으로 파악하고 이러한 기록을 통해 지역사회의 근현대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아포일기 완간을 통해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영호남간 비교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를 구축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책임연구원 이정덕 교수(고고문화인류학과)는 “한 농민의 생애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포일기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작은 역사 기록”이라며 “우리 연구실은 앞으로 개인기록 자료의 범위를 농촌에서 도시로, 국내에서 동아시아로 점차 확대해가면서 개인기록을 통한 동아시아 근대성 비교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개인기록을 통한 지역현대사의 재구성’을 목표로 한 전북대 SSK개인기록연구팀은 현재 인천과 충청 지역의 중산층과 지식인의 일기를 발굴해 독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기록이 자료화돼 세상에 나오면 국내 각 지역 간, 도농 간 비교연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