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일하는 즐거움

2017년 겨울, 38년 7개월의 기나긴 교도관 생활을 마무리했다. 많은 이들이 퇴직을 인생의 마침표로 여기지만 나에게 그것은 새로운 문을 여는 시작점이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세대에게 퇴직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선이기 때문이었다.

교도관으로 재직하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약 2년여간, 나는 수형자들의 취업과 창업을 돕는 일을 했다. 그때 배운 고용노동부의 중장년 일자리 정책들, 워크넷 활용법, 그리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의 메커니즘은 훗날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옛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도둑질과 계집질 말고는 다 배워두면 도움이 된다."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보다 더 적확한 조언이 또 있을까 싶다.

퇴임을 한 달 앞두고 고향 향우회에 나갔을 때였다. 우연히 워크넷에서 버스회사 채용 공고를 보았고, 마침, 그 회사 대표가 고향 선배님이셨다. "일자리 하나만 마련해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간절히 부탁드렸다. 선배님의 대답은 즉답이 아닌 "생각해 보겠네"였지만, 그 말속에 희망의 여지가 있었다.

면접장에서 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일할 의지를 보여드렸다. 공무원 출신이라는 편견을 깨야 했다. 많은 회사가 공직 퇴직자들을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편한 환경에서 일했다는 선입견, 높은 노동강도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버스회사에서의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명절과 휴일은 더 바쁜 운수회사의 특성상 가족과의 시간은 사치였다. 여름휴가는 번번이 뒷전으로 밀렸고, 가족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매일 컴퓨터 화면의 작은 엑셀 글씨와 씨름하다 보니 눈도 침침해졌다.

하지만 그 6년은 허투루 보낸 시간이 아니었다. 일하는 보람과 긍지가 있었다. 삼식이(?)가 아닌 영식님(?)으로 살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6년 만에 버스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려 했다. 후임자에게 한 달간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막상 쉬려 하니,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도움 요청의 손길이 왔다. 전주에서 김제까지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내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운전도 서투른데 그 먼 길을 매일 오가며, 하루 종일 작업 현장에서 땀 흘리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달을 그렇게 일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젊었다.

그즈음 전주의 한 일간지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전무님과 메밀국수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나눈 대화는 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책도 내신 실력이니 우리 신문사에서 정치부장으로 일해주시겠습니까?"

나는 망설였다. 과연 내가 기자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전무님은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고, 얼떨결에 승낙하고 말았다.

어느덧 기자 생활 1년 7개월. 처음에는 기사 쓰는 법을 몰라 애를 많이 먹었다. 전문 기자들을 멘토로 모시고 이것저것 물어가며 배워야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교도관 시절의 경험들이 큰 자산이 되었다. 교도소와 교도관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나올 때마다 반론을 써서 언론에 기고했던 경험, 총무과에서 10여 년간 자발적으로 맡았던 홍보업무, 그리고 그때 알게 된 기자들과의 인연이 모두 현재 나의 기자 생활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때 알고 지내던 분들이 이제는 모두 선임 기자가 되어 나를 도와주고 있다. 그분들의 존재가 내게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함께 퇴직한 동료들은 탁구장이나 파크골프장을 다니며 여유로운 노후를 보낸다. 그들의 선택도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전북도청 기자실에서 지방지와 중앙지의 기사들을 읽으며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평소에는 신문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았는데, 이제는 돈을 벌면서 신문을 읽는다. 남들은 도서관에서 어깨너머로 신문을 훔쳐보는데, 나는 당당히 기자실에서 신문을 읽는다. 이것이 바로 자존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앞으로도 세상을 밝게 만드는 기사를 쓰고 싶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퇴직 동료들보다 더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된다.

일하는 즐거움.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퇴직 후 7년여를 일하며 깨달은 소중한 진리다. 일은 우리를 늙지 않게 하고, 사회와 연결되게 하며, 무엇보다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게 만든다.

100세 시대, 우리는 더 오래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더 오래 일하며, 더 오래 배우며, 더 오래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 세대가 맞이한 새로운 인생의 고등 방정식이다.

이만호 / 수필가·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