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비가 될 거야?”

“그래야지. 너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천하다고 손가락질하는데도?”

“왜 천한 건데?”

물어보는 남준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거야…….”

“너도 당골래가 나쁜 건 아니라고 그랬잖아. 너희 어매도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어려움을 씻어주는 귀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너한테 말했다면서.”

명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슬며시 남준의 눈을 피해 시선을 개천으로 보냈다. 무릎 위에 턱을 올린 채 생각이 많은 눈으로 흘러가는 물을 바라봤다. 

“하지만, 사람들이 천하다고 말하는 게 듣기 싫어. 우리를 그렇게 보는 것도 싫고. 한 세상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괴로워.”

“나도 사람들이 우리를 낮잡아보는 게 싫어. 하지만 당골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정해진 걸 어떻게 하겠니. 너도 그게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거 나도 알아. 알지만 싫고 힘든 거는 힘든 거잖아.”

“그래 맞아. 나도 네 마음 다 이해해.”

그때, 섶다리 건너 방천 아래에서 워낭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소와 고삐를 쥔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남준 명희와 같은 학년인 강정근이었다. 

남준과 명희는 표정이 굳어졌고 소와 강정근이 섶다리를 건너올지 몰라 얼른 몸을 일으켰다. 소가 방천을 넘어오면 섶다리를 양보하려고 했다. 

“야, 너희들이었구나!”

강정근은 두 사람이 반가운 건지 소리를 질렀다. 

“먼저 건너와.”

강정근은 손까지 팔랑거리며 남준과 명희를 재촉했다. 강정근은 지난번 남준이 박주성 일행에게 몰매를 맞을 때 말려줬던 아이다. 

강정근은 남준과 명희를 천시하는 부류인 박주성 일행과 어울려 다니기는 하지만 비교적 남준과 명희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아이다. 

그래도 남준과 명희는 강정근이 거리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남준과 명희는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어정쩡한 얼굴로 섶다리를 건너갔다. 

“아까 그 피리 소리 남준이 네가 분 거지?”

남준의 손에는 아직 피리가 들려 있었다. 남준은 대답을 못하고 들고 있던 피리를 바라봤다.

“야, 정말 잘 불더라. 듣기 좋던데.” 

남준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얼굴만 붉어졌다. 

“나도 배워보고 싶어.”

“너도 굿놀이에 관심 있어?”

“당연하지.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데.”

그런데 왜 당골래들을 하대하고 미천하다고 놀려대니? 남준은 강정근을 빤히 쳐다보며 눈으로 말했다. 

“히히, 다른 아이들이 뭣도 모르고 어른들이 그러니까 당골래라고 놀려대고 그러는데, 사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마음속으로는 나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는 걸 잊지 마. 나도 할 수 없이 아이들이 그러니까 그런 척 하지만 남준이 너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 이건 내 솔직한 마음이야. 굿놀이가 얼마나 좋은데. 헤헤.”

“정말로…… 그러니?”

“그럼! 우리들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많은 아이들이 동조하더라고. 히히.”

남준은 고개를 돌려 명희를 바라보고는 시선을 강정근에게 돌렸다. 명희는 어색했지만 굳어 있던 얼굴이 풀어져 있었다.  

“미안해.”

강정근은 남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준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강정근의 손을 잡았다. 

“나중에 나도 너한테 피리를 배우고 싶어. 가르쳐줄 거지?”

남준은 다시 명희를 한번 본 뒤 강정근을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담은 눈을 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학교가 파하고 무장읍내를 걸어오는데,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웅성거렸고 다들 조금씩 들뜬 얼굴들이었다.

“일본 놈들이 그예 망하고 말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