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희는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져 불꽃이 일 것 같았다. 벌건 화로를 그대로 뒤집어쓴 기분이다. 창피하기보다는 화가 났다. 

“가자!”

명희는 남주 손을 잡고 얼른 집으로 들어 와버렸다. 남주는 울음보를 수습하지 못하고 한동안 소리 내어 울었고 명희는 그런 남주를 꼭 안아줬다. 

“남주야, 집에 고무줄 있지? 나랑 같이 고무줄놀이하자.”

남주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주는 얼른 토방으로 올라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고무줄 하나를 들고 나왔다. 

“언니, 여기 있어.”

명희는 고무줄 한쪽을 기둥에 묶고 다른 쪽은 빨래 간짓대에 묶었다.

“봐봐, 언니가 하는 거 보고 따라 하면 되는 거야.”

명희는 다리 사이에 고무줄을 넣고 이리 뛰고 저리 뛰기도 하고 고무줄을 발목에 걸었다가 풀어주면서 노래를 불렀다. 

“언니, 나도 할래.”

남주도 명희를 따라 고무줄을 다리 사이에 넣고 넘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둘이 그렇게 정신없이 노는 동안 토담 너머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곧 남준과 남준의 부모가 땀을 흘리며 장구와 북을 들고 들어왔다. 

남주는 신동댁을 보자 얼른 뛰어가 다리를 붙잡고 조금 전 골목에서 아이들이 고무줄놀이에 끼워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쏟아내며 칭얼대고 어리광을 부렸다. 

명희는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가겠다고 하자 신동댁은 굿을 하고 얻어온 자두와 참외를 다른 보자기에 싸줬다. 

“내가 들어다 줄게.”

남준이 보자기를 들고 명희를 따라나섰다. 

“혼자 가도 되는데…….”

말을 하는 명희의 표정이 시무룩했다. 남준은 보자기를 들고 명희와 함께 싸리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 개천 섶다리에 이르는 동안 명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 아이들 때문에 기분이 상했겠구나.”

명희는 남준의 말이 채찍이 되었는지 조금씩 흐느끼더니 울먹였다. 얼마간 누적된 서러움이 봇물 터지듯 터진 것이다. 

남준은 걸음을 멈췄고 명희를 섶다리에 앉혔다. 개천 물 흘러가는 소리에 명희의 울음이 섞여 들어갔다. 남준은 명희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울음소리가 잦아들 무렵 남준은 그때까지 헝겊으로 돌돌 만 것을 들고 있었는데 헝겊을 풀고 그것의 끝을 입에 물었다. 

곰방대보다 조금 더 두꺼운 물건이었는데 남준은 그 물건 중간 중간에 뚫린 구멍을 양 손가락으로 막고는 천천히 바람을 넣어 불었다. 

대숲 사이로 몰려든 바람이 한 줄기씩 빠져나가는 듯 낮은 소리가 개천 물 위로 흘러가는가 싶더니 바람을 타고 명희의 몸을 감싸고 돌았는데, 그 소리는 어매의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명희의 들썩이던 마음을 감싸 안고 고요한 숲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들어가는가 싶으면 다시 나와 소나무에 앉으려는 학이 되어 넓은 날개를 펴고 너울너울 춤을 추웠다. 명희는 조용히 그 소리를 듣다가 고개를 돌려 남준을 바라봤다. 

붉게 노을 지는 하늘과 푸르게 익어가는 벼, 나지막한 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나무와 참나무들의 푸른 잎들 모두가 남준이 입에 물고 있는 작은 대롱으로 슬며시 빨려 들어왔고 다시 바람을 타고 세상 밖으로 나가 풍경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을 빨아들였다가 내뱉고 있었는데 그걸 불고 있는 남준과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명희마저도 세상과 한가지로 대롱 안으로 들어갔다가 슬며시 밖으로 나오는 듯했다. 

명희는 모든 걸 잊고 남준이 불어주는 피리 소리에 빠져 들어갔고 일시에 명희를 누르고 있던 것들은 바람이 되어 저 멀리 아득한 곳으로 날아 가버렸다. 

“언제 배운 거야?”

“틈틈이 아버지께 배웠어. 아직은 배우는 단계야. 히히.”

“아주 잘 부는데.”

명희는 선망 어린 눈으로 남준을 바라봤다.

“잘 불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