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직도 신문을 보십니까

“언젠가부터 눈 속엔 나비가 들어와 살고, 귓속엔 매미가 들어와 산다.”

누군가 노화 현상을 위트있게 표현한 농담이 웃프다.

나도 가끔 비문증이나 이명 현상이 나타났다 없어지는 경험을 해보아서 그 불편함을 잘 안다. 처음엔 화들짝 놀라며 걱정했지만 이제는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세월 앞에 찾아오는 손님이려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나마 시력은 걱정이 덜하다. 젊어서 시력이 좋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은 노안이 빨리 와서 돋보기가 필요하지만, 나처럼 젊어 근시였던 사람은 나이 들어서는 안경을 벗으면 글씨가 더 잘 보이니까 돋보기가 필요 없다. 이 나이에 글 읽고 쓰는 일에 아직 불편함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수십 년째 조간신문 구독자이다. “아직도 신문을 보십니까?” 주변인들이 의아한 듯이 묻는다. 그 작은 신문 활자를 참말로 읽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 자리에서 즉시 안경을 벗고 두리번거리다가 깨알 같은 글씨를 찾아내 읽어주면 이내 궁금증은 풀린다. 뒤이어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 인터넷 검색을 하면 모든 걸 알려주는데 구태여 돈 주고 신문을 보느냐고 재차 묻는다. 나는 빗대어 느림의 미학을 설파한다. 비록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주변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려면 자전거를 타거나 한가로운 산책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현관문 앞에 던져진 조간신문은 보통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남편이 집어온다. 남편은 아직 다 휴발되지 않은 신문지의 특유한 냄새와 새벽바람의 냉기가 섞인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의 유일한 독서 시간이다. 아침 식사 전까지 다 못 읽었는지 식후에 다시 붙든다. 돋보기를 끼고 글을 오래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면서도 계속 읽는다. 남편이 점심 약속 있다며 외출한 후에야 신문은 내 차지가 된다.

난 가끔 딴 일거리로 섯돌아치는 바람에 신문을 밀쳐 둘 때가 있다. 그렇게 쌓이다보면 어느 땐 며칠 분량을 몰아서 보기도 한다. 안 읽고는 절대 버리지 않는 충실한 구독자이다. 같은 기사라도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맛과 종이 맛은 다르다. 또 핸드폰 상의 기사 읽기는 시간 때우기라면, 신문은 관심있는 분야의 기사를 골라 시간을 들여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하며 읽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어 좋다. 세상 물정에 약삭빠르지 못한 탓인지 뭐든지 유행보다 한 걸음 뒤떨어져야 마음이 편하다. 바야흐로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영상시대인데 나는 여전히 문자를 사랑하며 아날로그 세상을 즐기고 있다.

내 친구의 남편 중, 나만큼이나 신문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물건을 잘 안 버리는 습성이 있다는데 특히 책이나 신문 등 활자화 된 것을 함부로 못 버리고 쌓아두는 바람에 저장 창고가 따로 필요할 정도까지 왔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모든 물자가 풍성하지 못했던 60~70년대를 통과하면서 자연스레 검약이 몸에 배인 사람일 것이다. 친구는 버릴 것 바로바로 버리고 공간을 넓게 쓰자는 주의이고, 친구의 남편은 다른 건 몰라도 책자나 신문은 글쓴이의 노고를 생각하면 함부로 버릴 수 없다고 고집하다보니 이 문제가 부부간 말다툼거리가 되곤 한단다. “글쓴이를 존중하는 걸 보니 자네 남편은 참선비시다!”고 말했다가 하마터면 우정에 금이 갈 뻔 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 문자는 갈수록 홀대받고 있다. 교사로 재직 중에 문예담당자로서 교지나 학교신문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졸업식장에서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에게 의미있는 선물이려니 그것들을 안겨주건만 늘 기대는 어긋난다. 애써 만든 교지나 학교신문이 펼쳐본 흔적도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 모습을 보면 정교한 활자 퍼즐이 와르르 무너지듯 내 마음도 무너진다. 글 한 편 한 편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완성되는지 글을 써 본 사람은 안다. 글쓴이는 물론 편집, 편찬할 때까지의 여러 손길의 수고가 한순간에 사라짐을 볼 때 내 마음도 찢어진 종잇장만큼 찢어진다. 내 자신이 짓밟힌 듯한 모멸감이 느껴진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일간 신문의 애독자로 남아있을 것이다.

최선욱 / 문학박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