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해…….”
목소리 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박명희가 다가오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곧 뚝뚝 떨어뜨릴 것처럼 보였다.
“흐윽흐윽……. 많이 아프지…….”
명희는 남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어찌해야할지 안절부절못하면서 울음을 입술에 물었다.
“히힛, 괜찮아.”
남준은 거짓 웃음을 날리며 얼른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곤 양팔을 힘차게 앞뒤로 폈다 오므렸다 했다.
“봐봐. 아무렇지도 않잖아. 히히.”
아무렇지도 않기는. 아까 악동들에게 맞은 옆구리와 팔이 욱신거렸다. 통증 때문에 얼굴이 찡그려지는 것을 꾹 참고 면상을 곧게 펴려고 얼른 다림질 했다.
“아픈 거 같은데…….”
울음을 그친 명희는 매고 있던 책보를 풀러 보자기 끝으로 남준의 코피와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아줬다.
“괜찮다니까…….”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얼굴을 닦아주는 명희의 손길이 싫지는 않다.
“그러게 왜 나서고 그래. 네 일도 아니면서…….”
“왜 내 일이 아니야. 당연히 내 일이기도 하지. 너만 당골래 자식이냐? 나도 당골래 자식이야. 우리는 같은 편이야. 같은 편이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되니?”
“그래도…….”
명희는 당당하게 말하는 남준의 대꾸를 반박할 수 없다.
“넌 당골래 자식이라는 말이 싫지 않아?”
“싫기야 싫지, 왜 안 싫겠어. 하지만 당골래 자식이라고 놀리는 놈들이 싫지, 당골래 자식 자체가 싫지는 않아. 너도 그렇잖아. 안 그래?”
명희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버지가 그랬어,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특별한 사람이라니?”
“당골래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어려움을 씻어내 준다고 그랬어.”
“우리 어매도 그렇게 말했던 거 같아.”
“맞아 당골래는 나쁜 일을 하는 게 아니야, 그렇지? 히히.”
“맞아. 헤헤헤.”
남준과 명희는 아이들에게 수모를 당했던 것은 금세 잊어버리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히죽거렸다.
“우리도 미끄럼 타러 갈까?”
“어디로? 입술이랑 아프지 않아? 피가 났잖아.”
“아니야. 괜찮아.”
남준은 다시 팔소매로 코와 입술을 쓱 닦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오늘 아침에 학교 오면서 봐둔 데가 있어. 묘지 올라가는 데 눈이 쌓여 있더라. 거기 가자.”
남준은 어느새 명희의 손을 잡아끌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 거야?”
명희는 남준의 손에 이끌려 따라가며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남준과 명희는 남준이 봐뒀다는 묘지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에 다다랐다.
무장 관아 터를 지나 뒤편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남준의 동네와 명희의 동네가 나오는데, 두 아이가 당도한 지점은 그 중간 어디쯤이었다.
남준은 허리에 찬 책보를 풀어놓고 주변에 있던 소나무 나뭇가지를 썰매로 탈 만한 크기로 꺾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소나무 잔가지에 달린 솔잎에 앉고 꺾어진 나무줄기를 잡고 발을 구르면 언덕에서 아래로 쌓인 눈을 따라 쭉 미끄러져 내려갔다.
“와, 재밌다!”
남준은 소나무 가지를 끌고 올라와 명희에게 내밀었다.
“너도 해봐.”
“네 것은?”
“다시 만들면 되지.”
남준과 명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작은 언덕에서 소나무 가지로 미끄럼을 탔다.
둘은 점심밥도 잊은 채 미끄럼 타는데 정신이 없었는데 양 볼이 열기로 빨갛게 달아올랐고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도 얼굴에서 연신 웃음의 폭죽을 터뜨렸다.
“배고프다. 이제 가자.”
남준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는데 어느새 코피를 흘렸던 흔적과 입술 터진 부위가 말끔해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