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성은 덩치는 남준보다 작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주변에 몰려있는 아이들은 모두가 박주성 편이었다. 그 빽을 믿고 남준에게 함부로 해대는 것이다.
“당골래는 백정 놈들이나 남사당패 놈들하고 똑같이 천민이야. 시절이 변했다고 해도 천것은 천것이라고, 알아!”
이제 겨우 열 살 이쪽저쪽 정도밖에 안 된 아이들이었지만, 어른들이 따지는 반상의 구분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먼저 체득하고 그걸 따져 서열을 구분하려 했다.
남준도 할 말은 하고 싶었다. 반상이 무너진 때는 이미 한참 지나 있었다.
“천것이라고 그렇게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야?”
“왜? 그러면 안 되냐? 천것을 천것으로 대한다는데 이유가 있어?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따복따복 말대꾸야!”
남준의 눈에 불꽃이 확 일었다. 박주성이 남준의 빰을 후려갈긴 것이다. 남준도 그냥 맞고 있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박주성의 얼굴을 갈겼다. 박주성이 휘청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니, 이 자식이!”
박주성이 남준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들었다. 남준은 오히려 박주성의 멱살을 잡고 밀어 넘어뜨렸고 곧바로 박주성의 배 위로 올라탔다.
주변에서 보고 있던 다른 아이들은 그냥 관중으로 공간이나 채우려고 서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천한 상놈의 자식이!”
사방에서 남준의 등과 얼굴, 배에 발길질이 가해졌다. 남준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고 팔을 얼굴로 올려 녀석들의 발길질을 막아보려 했지만 불어오는 강풍을 손바닥으로 막는 격이었다.
남준의 입술은 터졌고 코피가 흘러나왔다. 어린 악당들은 피에 굶주린 아귀가 되어 눈에 핏발을 세우고 폭력의 광란에 빠져들어갔다.
“야, 그만해. 그만하라고! 그러다 이 자식 죽어!”
악귀들 중에 정신이 돌아온 놈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정신을 수습한 아이는 악당 녀석들을 하나둘씩 밀쳐내며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악동들은 남준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천한 놈은 천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말리지 마라.”
박주성은 말리는 아이를 밀치고 쓰러져 있는 남준을 향해 발길질을 하려 했다.
“그만 하라니까!”
말리는 아이는 박주성을 칠 듯 소리치며 그를 남준으로부터 밀쳐냈다.
“강정근, 너는 왜 말리는 거야? 이 자식하고 친척이라도 되냐?”
박주성은 강정근을 쏘아보며 물었다. 강정근은 머뭇거릴 뿐 입을 열지 못했다.
“자, 자 그만 하자. 이만 하면 됐다. 우리 썰매나 타러 가자.”
다른 아이가 박주성을 말렸고, 아이들은 그러자며 남준을 남겨놓고 강당 뒤를 떠났는데, 강정근은 걱정스런 눈으로 남준을 돌아보며 아이들을 따라갔다.
“어엉엉엉…….”
남준은 쓰러진 채 서러움이 복받쳐 울기 시작했다. 눈물은 코피를 흘렸던 얼굴을 덮으며 흘러내렸고 찢어진 입술 사이로 입안으로 흘러들어갔다.
아이들에게 맞은 자리가 아파서 우는 게 아니다. 이겨낼 수도 없는,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질량이 압착하듯 누르고 있어 우는 것이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해서 울지 않으면 그대로 정말 폭발할 것 같았다. 이렇게 울음이라도 터뜨리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소리 내어 우는 것이다. 잠시 마음껏 울었더니 묵직했던 속이 좀 풀리는 듯 했다.
“남준아…….”
울음이 잔잔해졌을 때 쯤 남준의 귀에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준은 얼른 소매로 눈물을 닦았고 부지런히 코피와 입술 끝에 흘러내린 피를 역시 소매로 문질러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여자아이 목소리가 누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