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덕진구 노송동에 자리한 ‘상생과 나눔’ 사무실을 찾아간 날 정인 스님은 마침 추석 명절을 앞두고 형편이 어려운 이웃 100여 명을 초청하여 생필품과 건강식품, 건강보조기구 등을 한아름 나누는 대규모 보시행(布施行)을 실천하고 계셨다.
정인 스님은 청소년, 노인, 장애인 복지 활동을 통해 지난 40여 년간 이웃들의 친근한 벗으로 살아가며 존경받는 분이다.
스님은 출가 후 “절을 세워 절 안에 갇힌 생활보다는 세상 속에서 중생들과 더불어 그들의 친근한 이웃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그 이타행(利他行)을 화두로 삼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일상의 노고 속에서도 늘 기쁨과 만족을 찾는다는 정인 스님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그 깊은 나눔의 철학과 실천의 길을 조명해본다.
“어려운 분들, 도와도 제대로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스님께서는 매년 명절과 가정의 달마다 대규모 나눔 행사를 꾸준히 이어오고 계십니다. 이러한 나눔 행사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A : 저는 매년 설날, 5월 가정의 달, 그리고 추석 명절, 이렇게 연 3회 이상 나눔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사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쭉 이어져 왔습니다.
제가 나눔을 할 때는 한 사람을 도와도 제대로 돕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물품도 한 번에 10가지 이상을 준비합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14-15가지 물품을 줬습니다. 많을 때는 7천만 원이나 8천만 원 상당의 물품을 150명에게 지원하기도 했죠.
이번 추석 명절 행사만 하더라도 약 4,500만 원 정도가 들었고, 경비까지 포함하면 4,800만 원 정도가 소요됐습니다. 침향단 2개월분, 산양산삼, 보호대, 햅쌀, 라면, 프로폴리스 치약, 칫솔 세트, 글루코사민, 스마트 인삼 파스, 기념 타월 등 10가지에 텀블러까지 총 11가지 품목을 100명에게 제공했습니다. 어르신들은 비싸서 사 드시지 못하는 귀한 침향단(제값 치면 4,500만 원 훨씬 넘죠) 같은 것도 포함해서 드립니다. 저희는 선정 기준에 따라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추천한 분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Q. 이처럼 큰 규모의 나눔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후원이 필수적일 것 같습니다. 후원자분들과의 관계는 어떠신가요?
A : 저 혼자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JG 홀딩스의 이재구 회장님(봉사 단장 겸 후원회장)이 작년부터 전액 후원을 해주시는 등 적극적인 도움을 주십니다. 저희 후원회원이 다 합치면 200명이 넘습니다. 또한, 전주 수한방병원에서도 암 환자나 독거노인 위안 잔치, 선풍기 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눔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저 가교 역할만 할 뿐입니다. 후원자들이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비용을 내고, 병원이나 독지가들이 큰 도움을 주시니 이 행사가 지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Q. 스님의 복지 활동은 단순히 물품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직접적인 보살핌으로 이어진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암 환자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고 계시다고요.
A : 그렇습니다. 저는 현재도 무애사 공간을 월세로 운영하면서 4명의 암 환자를 직접 모시고 있습니다. 과거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재정적 여력이 부족하여 수술을 못하는 암 환자 30여명에게 수술을 시켜주었습니다. 보험이 안 될 때부터 대학병원 등에서 후원을 받아서 지원했죠.
이 외에도 허리나 무릎 관절 등으로 아픈 이웃들이 대학병원에 가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가 연결해 주는 등 어려운 이들을 위한 소통과 상생의 역할을 맡아서 행하고 있습니다.
Q. 노인 복지는 언제부터 시작하셨고, 어떤 활동을 해 오셨습니까?
A : 저는 90년대 초부터 노인 복지를 해 왔으니, 30여년 가까이 꾸준히 해온 일입니다. 처음 출가했을 때는 소년소녀 가장을 돕다가 95년, 96년도부터 노인 복지를 같이 겸해서 전문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의 쉼터이자 아픔을 나누는 '소통과 상생'이라는 공간도 따로 마련하여, 절망적인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밖에 모르는 세상, 따뜻한 온정을 지닌 분들이 많아 살 만합니다”
Q. 스님께서 평생을 이타적인 삶에 헌신하는 특별한 철학이나 동기가 있을까요?
A : 제가 어렸을 때 배고픔을 알았고, 어머니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등 소년가장으로 험난한 삶을 사는 동안 어려운 시절을 많이 겪었습니다.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혼자 살아왔기 때문에 그 배고픈 시절을 겪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이 들어가신 노인분들, 이 나라의 틀을 만드신 분들을 돕게 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이 일을 계속하고 있네요.
저는 "죽어서 극락 가고 천국 찾지 말고 현재에서 기쁨을 찾고 행복을 찾아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기뻐야 그게 바로 천국이죠. 마음이 괴롭고 힘들면 그게 지옥인 것입니다.
저는 늘 다가오는 시간에 도전합니다. 지난 일에 매여 있으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과감히 내려놓고 희망을 전합니다.
Q. 고령이신데도 무애사를 월세로 운영하시면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해내신다고 들었습니다.
A.: 그렇습니다. 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고령의 나이에도 직접 밥을 지어 먹고 손수 빨래와 청소도 직접 하는 등 몸소 자립 정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 무(無)의 상태, 무의불(無依佛)이라고 생각합니다.
Q. 스님의 궁극적인 꿈이나 계획은 무엇입니까?
A : 나중에 복지관을 짓는 것이 꿈입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무료로 운영할 수 있는 그런 복지관을 짓는 것이 목표입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지으면 사업성을 띠게 되니, 출가한 스님이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순수한 나눔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후원처도 다 마련해 놓고 물러날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스님께서 우리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A : 요즘 사회가 날이 갈수록 각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정(情)이 없고 예(禮)가 없어진 나라가 되어가고 있어요. 나밖에 모르는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까지도 세상은 살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나눔 행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온정을 가진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생에 왔다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가야 죽을 때 웃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어려운 이웃들의 옆에서, 한 알의 밀알이 돼서 그들과 함께 웃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기자 후기]
40년 삶, 스님의 삶 그 자체가 바로 경전이다.
정인 스님과의 1시간여 인터뷰는 그 자체로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를 일깨워주는 수행이었다. 스님은 말로만 하는 자비가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자비를 직접 보여주셨고, 죽어서 극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 순간을 극락으로 만드는 지혜가 거기에 있었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오히려 남을 돕는 힘으로 승화시키고, 이 나라의 어르신들을 돕는 일에서 큰 보람과 행복을 찾는 스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생활 속에서 남을 돕는 것이 곧 삶의 보람이자 가장 큰 행복임을 깨닫게 한다.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이타행을 실천해 온 정인 스님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전이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함께 웃으며 살아가겠다"는 스님의 다짐은 메마른 세상에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명문장으로 남아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스님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배우며, 아직까지도 이 세상은 살 만하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부록: 정인스님은 ?
지리산 주지사에서 출가하여 승복을 입고 산사에 머무는 삶을 살지 않고 세상에 나와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1996년에는 효자동에서 의료기기와 편의시설을 갖춘 노인 사랑방을 운영하며 독거노인과 암환자 등에게 희망을 전하다가 2002년부터 아중리에 연꽃마을 자비원을 열고 노인과 암환자, 무연고 아동 등을 보살피고 있다.
2011년부터 해마다 설과 추석, 어버이날 등 년 3~4회에 걸쳐 경로행사를 통해 어려운 이웃에 쌀과 생필품, 건강보조식품 등을 전달해오고 있다. /이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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