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는 이명주에 대해 설명을 더 해갔다.
지금의 고창농악전수관과 고창농악보존회가 정립된 계기와 기틀을 그녀가 마련하였으며 해마다 농악전수관을 거쳐간 연수생의 숫자가 늘고 있고, 7년 전에는 전주대사습놀이 농악부문에서 고창농악이 장원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고, 올 초에는 일본 후쿠오카에도 초청되어 초청공연을 연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오늘 공연할 도둑잽이굿은 3년 전에 30년 만에 굿이 재연된 이후 두 번째 공연이라 했으며, 이 굿은 고창농악의 특징인 가락과 춤의 조화가 잘 이뤄진 공연으로 판굿의 대표라 할 수 있는데, 판굿은 정해진 장소에서 행하는 다른 여러 종류의 굿인 문굿, 길굿, 조앙굿, 천룡굿, 샘굿, 당산굿 등을 끝내고 판이 마련된 동네 광장에 마을사람들과 연행자들이 모두 모여 마음껏 웃고 떠들며 자유롭게 흥을 내는 굿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관객들은 대부분 가족단위나 친구 혹은 연인 사이들이 많았고 동식처럼 혼자 공연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름지기 건달의 포지션을 유지해야할 자리는 술집이나 룸살롱, 나이트클럽 같은 유흥업소다. 좀 침침하고 어둑어둑해서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쌍욕을 하고, 나라에서 금하는 짓을 좀 진행해도 모르는 척 지나가는 그런 곳이 건달에게는 잘 어울리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조폭이 농악공연장에 앉아 있다니,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농악은 우리민족이 갖고 있는 순수함과 고결함과 깨끗함을 품고 있는 민족정신이다. 하찮은 깡패가 참여해서 어울린다면 어쩐지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는 송구스럽고 죄송스런 마음이 드는 것이 동식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런 마음은 마음이고 농악공연장에 와 앉아 있는 지금만큼은 동식은 건달이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농악이 좋아서, 아니 사회자가 말한 대로 굿이 좋아서 굿판이 좋아서 찾아온 필부에 불과하다.
굿이 시작되었다. 나발의 깊고 넓은 음이 길게 소리를 내어 공연장을 보듬었다.
농자천하지대본 깃발과 고창농악보존회 깃발이 들어왔고, 잠시 후 무대 뒤에서 땅과 하늘 온 천지의 만물을 깨우는 꽹과리소리가 울리고, 이어서 장구와 징, 북과 소고의 종합 연주가 들린 뒤에 새납의 구슬프면서 애잔한 고음과 함께 얼굴에 가면을 쓴 잡색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총을 들고 머리에 대장군 모자를 쓴 대포수, 곰방대를 들고 정자관을 쓴 영감, 머리에 가채를 쓴 망구, 부채를 들고 갓을 쓴 참봉, 붉은 치마에 노랑저고리를 입고 노랑 고깔을 쓴 각시, 목탁을 들고 머리에 승낙을 쓴 조리중, 적색 두루마기에 붉은 고깔을 쓴 홍적삼, 종이로 만든 부포를 쓴 비리쇠, 까만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꿩털을 세운 패랭이를 쓴 좌창과 우창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등장하였다.
잡색들의 뒤를 이어 치배들이 역시 느린 걸음으로 디딤 발을 옮기며 가락을 연주하면서 들어왔는데, 흰바지 저고리에 빨간 더그레에 부포를 쓴 상쇠를 필두로 같은 복색의 여러 명의 꽹과리와 흰바지 저고리, 파란 조끼에 고깔을 쓴 징과 소고, 북, 장구 연행자들이 줄줄이 이어서 들어왔다.
연주는 느리게 이어지다가 빠른 박자로 속도를 올리면서 공연장을 채웠다. 그들은 우르르 몰려갔다가 몰려오고 흩어졌다가 하나로 모여들고 하면서 일정한 박자로 빠르게 연주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한자리로 모여들더니 모두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나발소리를 필두로 상쇠의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징소리가 이어지고 곧 이어 장구와 북 소고가 뒤를 받쳐주면서 다시 몸을 일으킨 연행자들은 똬리를 틀 듯 천천히 거리를 좁혀 돌아가면서 징소리와 꽹과리에 맞춰 연주를 이어갔다.
.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