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깡패와 굿패 1부 '깡패와 장구'(14)

“봉사활동은 이곳 호암마을에서 할 거예요. 지난겨울 폭설로 여기 있던 돼지막사가 다 무너졌어요. 그걸 치우고 있어요.”

당신도 여기서 같이 돼지막사를 치워야 한다가 아니라 치우고 있다고 말하는 건, 당신은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동식도 보호관찰관의 의도를 충실하게 따르기로 했다. 깨끗한 하얀 추리닝과 운동화에 흙을 묻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도 출석했다는 표시는 내야 함으로 금방 자리를 뜰 수는 없고 그렇다고 썩은 나무토막들을 나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지저분한 쓰레기들을 만져가며 일을 할 수도 없어서 보호관찰관으로부터 보고 아닌 보고를 받은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작업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주머니에서 말보로를 꺼내 불을 붙이고 이 동네가 나환자촌이었다고 하는데 대체 어떻게 생긴 동네인지 구경이라도 해보자는 참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 눈들이 있어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행정구역상 고창읍에 속해 있었지만 완전 시골이다. 그것도 70년대 이후에는 손을 댄 일이 없는 낙후된 마을이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블록 한 장으로 벽체를 세운 남루하기 짝이 없는 주거지들이 쓰러질 듯 힘겹게 서 있었다. 하기야 나환자촌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누가 관심을 가졌겠는가.

마을 위쪽으로 성당인지 교회인지 십자가 첨탑이 보였는데, 머리에 회색 두건을 쓴 여자 두 명이 부지런한 걸음으로 나오더니 작업현장으로 걸어왔다. 두건 모양이 수녀들이 쓰는 베일이었고 두 여자는 수녀인 모양이었다.

두 사람 다 나이가 들어보였는데 그 중 한 명은 여자치고는 키가 컸고 덩치가 있었다. 얼른 봐도 여기 한국 사람이 아닌 서양인으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생각지도 않게 그 서양인 수녀가 활짝 웃으며 동식에게 인사를 건넸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담배를 물고 있던 동식은 얼른 담배를 뒤로 감추고 고개를 숙여 답례를 했다.

수녀들이 있는 걸 보니 십자가가 있는 저 낡은 건물은 성당인가. 이런 구질구질한 시골 촌구석에 성당이 자리해 있는 것도 낯설었고, 그 보다 더 생경한 상황은 이 작은 성당에 서양인 수녀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말이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동식은 마저 담배를 피우면서 서양인 수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른 수녀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시골 아줌마들이 입는 펑퍼짐한 몸뻬 바지를 입었다. 작업을 하려는 건가.

그녀는 다른 수녀와 함께 굴삭기가 한쪽으로 옮겨놓은 낡은 나무토막들과 잡쓰레기들을 들어 옮겼다. 수녀가 저런 일까지 하는 건가.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고 서양에서 온 수녀가 저런 궂은일까지 하다니 게다가 우리말도 잘 하고. 한국에 온지 오래된 건가.

“아이고 수녀님, 이런 거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허허허.”

“일 할 사람도 부족한데 우리라도 도와야지요. 우리도 마을주민인데 당연한 거 아니요, 호호호.”

서양 수녀는 동네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정담을 나눴고 유쾌하게 웃으며 일을 했다.

서양 수녀는 무슨 사연으로 이 촌동네에 와 있으며 거리낌 없이 저렇게 노동을 하는 건 왜일까.

동식은 다 태우지 못한 말보로를 얼른 바닥에 버리고 신발로 불을 껐다. 담배나 피우면서 구경꾼 노릇하려 했던 스스로가 멋쩍었다.

수녀가 그것도 한국 사람도 아닌 나이 든 서양 여자가 저렇게 자기 일인 듯 나서서 손을 보태고 있는데 팔짱을 낀 채 폼을 잡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게 부끄럽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