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다 겪은 동식으로서는 역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일까. 돈 10억 원이 너무도 달콤한 유혹이었다.
“종훈아, 나다. 잘 있었냐?”
같은 조직 출신으로 서울에 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 후배 서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과는 교도소 같은 방과 같은 공장에서 지냈던 사이다. 건달로서 자세가 되어 있는 놈이고 믿을 만한 놈이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타지역 건달이 하나 있었는데, 이놈은 일반 재소자를 협박해서 그자의 영치품에 손을 대고 있었다. 서종훈은 그 영치품에 손을 댄 건달을 양아치라면서 주먹으로 응징하다가 징벌을 받고 한여름 독방에서 생똥을 싸며 한 달을 버티었다.
강동식과 마찬가지로 서종훈도 형기를 만땅으로 꽉 채워서 출소했다. 동식은 박창수의 청부를 수락하고 마음을 굳히면 서종훈에게 일을 맡길까 생각하고 있었다.
‘아, 형님. 오랜만입니다요, 형님.’
“야, 사람좀 알아봐라.”
‘누구입니까요, 형님.’
동식은 서종훈에게 박창수가 동식에게 알려준 강용대의 사는 곳과 나이, 인상착의 등을 말해줬다.
‘예, 알겠습니다요, 형님. 곧 연락드리겠습니다요, 형님.’
그나저나 내일부터 사회봉사명령으로 호암마을이라는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데 영 내키지 않는다.
봉사활동 할 장소가 호암마을이라 해서 내비게이션을 찍었더니 아산면 반암리 호암마을로 안내가 되었다. 고창읍에서 북서쪽으로 대략 15킬로미터 지점에 호암마을이 있다.
인천강을 따라 달리다가 호암마을로 들어서려는데 우측으로 바위 절벽과 분리된 직사각형 모양의 바위가 우뚝 서 있는 게 보였다. 고창에도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외돌개 바위 같은 게 있었나 싶었다.
인천강을 건너는 호암교를 지나 호암마을 회관에 들어섰는데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차를 세워두고 회관 문을 열어보니 몸집이 뚱뚱한 노인과 마른 노인 둘이 앉아 있다가 동식을 쳐다봤다.
여기 봉사활동 하는 장소가 아니냐고 물으려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보호관찰 직원이다.
왜 아직 안 오느냐고 하여 도착했는데 어디냐고 동식은 물었다. 철거작업을 하고 있는 곳이 보이지 않느냐고 보호관찰관이 되물어왔다.
회관 앞에 차를 주차하면서 둘러봤지만 주변에 철거작업을 하는 곳은 없었다. 노인들에게 여기 철거 작업하는 곳이 있냐 물었더니 그런 곳은 없다고 말한다.
“어디를 찾아와씨까이?”
뚱뚱한 할머니가 동식을 경계하는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동식의 몸매와 머리스타일이 범상치 않아보였던 탓이다.
“여기 호암마을 아니에요?”
동식은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할머니들한테까지 가오를 잡을 일은 없다.
“호암마을이 맞긴 맞는디, 아매 다른 디를 말허는 것 같은디.”
마른 노인이 동식을 힐끗 쳐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다른…… 데요?”
“고창읍 신월리라고, 옛날에 그 뭣이냐 문둥이 마을이라고 있잖여, 문둥이 마을이라고.”
“문둥이가 뭐시여, 문둥이가! 한 뭐시기라고 허지.”
뚱뚱한 노인이 매운 눈으로 살집이 없는 할머니를 흘겨보며 퉁을 줬다. 동식도 어렴풋이 들어본 기억이 있다.
“한 뭐시기?”
“한센인요?”
“어, 맞아, 맞아. 그 한 뭐시기라고 허는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인디, 인자는 그런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번지고, 지금은 그냥 여그허고 똑같이 호암마을이라고 헌다드만. 원래는 동혜원이라고 혔지 아매.”
내비게이션이 잘못 알려준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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