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깡패와 굿패 1부 '깡패와 장구'

'용돈벌이라도 해야지?'

동식의 나이 벌써 서른다섯이다. 90년대에 징역에 들어갔다가 밀레니엄시대가 되어 나왔다. 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고 어제의 팔팔한 강동식이 아니다. 같은 세월 건달 생활을 한 놈들 중에 요리조리 세상의 파도를 제대로 탄 놈들은 사업체를 하나씩 갖고 있거나 아무리 못해도 술집 하나쯤은 꿰차고 있었고 가정을 꾸린 녀석도 있었다.

징역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여기 고창 바깥 놈들도 몇 번은 반갑게 대해주겠지만 그 반가움이 얼마나 가겠는가. 게다가 이 건달 생활이 이제 지겹다. 사람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짓도 지루하고, 경찰서나 교도소에 들락날락하는 짓도 이젠 넌더리가 난다.

아직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박창수라는 자의 제안이 진짜라면 한번쯤 숙고해 볼만 하지 않을까. 10억이란다. 10억이면 적은 돈이 아니다. 새 출발 할 수 있는 돈이다. 여기가 아닌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

머리만 잘 굴리면 이 몸이 직접 움직이지 않고 똘똘한 놈 하나 골라 뒤에서 조종만 하면 된다. 무게추가 긍정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다고 바로 박창수에게 전화를 넣지는 않았다. 고창 토박이 건달 체면이 있지.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으름장이나 놓고 위력을 과시하는 짓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잘못되면 남은 인생이 골로 갈 수 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오정태였다. 오정태는 동식보다 세 살 많은 고창을 주름잡는 조직의 두목이다. 패거리가 조직을 다질 때부터 동식은 정태와 함께 했다.

‘좀 쉬었냐?’

“예, 형님.”

‘쉬었으니까, 용돈벌이라도 해야지?’

“무슨……?”

‘청룡건설이라고 알지? 우리가 예전에 많이 뒤를 봐줬던. 이번에 농악 뭐시기에서 하는 공사를 하고 싶다더라. 요새는 다 전자입찰인가 뭔가를 한다. 그래서 어떤 놈들이 입찰에 들어오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전자입찰로 들어오는 놈들을 좀 눌러주란 말이다. 청룡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이지. 청룡 사장이 수고비는 좀 챙겨줄 거야. 어떠냐?’

“……생각해보겠습니다요, 형님.”

‘야, 생각하고 말 것 없어! 청룡에 전화해서 바로 알아봐.’

건달이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날 새벽, 어김없이 같은 식구들은 나름 깔끔한 복장을 하고, 고급차들을 몰고 와 교도소 앞에서 대기한다. 물론 선배들도 동참하는 때가 있다. 새벽 5시쯤이면 형기 마친 놈이 교도소 밖으로 나오는데, 서열보다 아래인 조직원들은 일제히 도열해서 수고했다고 90도 인사를 올린다.

출소하는 날, 동식은 내심 정태가 교도소 앞에 와 있기를 바랐다. 그 정도의 대접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동식은 섭섭했다.

조직의 우두머리는 조직을 잘 건사해야 한다. 아우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빵에나 들락거리게 하는 두목은 능력이 떨어지는 놈이다.

마약에는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처음 정태가 그걸 하자고 했을 때 동식은 손을 내저었다.

마약은 위험도가 높았다. 징역에서는 마약으로 들어온 죄수를 ‘뽕쟁이’라 부른다. 히로뽕에서 나온 말이다. 마지막에나 손을 대는 게 그 뽕이다. 동식은 고개를 외로 꼬았지만 두목이 하겠다니 손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