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읽었던 고전동화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기억하는가. 당시 많은 어린이가 이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은 이 책을 1873년에 썼지만, 2015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세계 일주’는 아직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예전보다 해외여행이 대중화했어도, 현실 속 제약이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잡아 꿈만 꿀 뿐이다.

그러나 여기 일상을 탈출해 세계 일주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발자취를 좇으면서 잠시나마 ‘대리만족’해 보는 것은 어떨까.

◇50년간의 세계일주

 앨버트 포델 지음/ 이유경 옮김/ 처음북스 펴냄/ 504쪽/ 1만6800원 

“그곳이 ‘나라’라면 나는 어디라도 간다.” 

이 책은 미국의 괴짜 노인 앨버트 포델이 1957년부터 2012년까지 약 50년간 지구 상의 모든 국가를 여행한 기록이다. 말 그대로 ‘모든’ 국가다. UN에 가입한 193개국과 UN 가입국은 아니지만 ‘국가’로 널리 인정받는 타이완·바티칸시티·코소보, 현재는 사라진 옛 체코슬로바키아·동파키스탄·서독·월남·소련·아랍에미리트연합국·유고슬라비아 등 200개가 넘는 국가를 방문했다. 

처음부터 그가 거창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사소했다. 스물두 살의 젊은 청년이었던 포델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읽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히치하이크를 하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닌 그는 더 많은 여행을 열망하게 된다. 이후 군 복무 중 캐나다 오타와, 잡지사 출장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와 프랑스 파리를 다녀왔지만 그 열망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본격적인 모험을 떠나기로 하고, 1965년 자동차를 이용해 26개국을 가는 ‘최장거리 육상 여행 세계 신기록’에 도전한다. 알제리에선 지뢰밭 한가운데에 갇히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선 사기꾼들에게 시달렸다. 전쟁 중이던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에서는 스파이로 몰리는 등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도 여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자동차 주행기록계에 거의 6만7000㎞를 기록한 뒤에야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 모험 이후 그는 광고회사에 취직해 부사장도 되고,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도 되지만 틈틈이 여행을 계속했다. 물론 전보다는 편안한 여행이었다. 

그렇게 2003년 말까지 110개국을 방문한 그는 마침내 10~20년 여생 동안 ‘모든’ 나라를 가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깨닫고, 일생의 도전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포델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먼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수많은 중동과 아프리카 나라의 존재에 놀라게 된다. 또 내전 중인 국가에 방문한 포델이 겪은 고초를 보면 아찔해지기까지 한다. 오래 지속한 여행이기에 지금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여행 당시 국제정서와 주민의 삶이 책에 녹아있다. 

우리는 정작 가지 못하는 북한 평양 여행기도 흥미롭다. 

“나는 많은 빈곤 국가의 수도와 그리 다르지 않은 초라하고 황폐한 도시를 기대했다. 하지만 깨끗하고, 현대적이고, 번영의 느낌이 나고, 부드럽게 돌아가는 살 만한 도시를 보고 놀랐다. … 하지만 조금만 면밀히 관찰하면 빈곤의 힌트들을 식별할 수 있었다. 우리 버스가 30분을 달리는 동안 도로에는 다른 차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말랐다. 주택가 공원에서 한 남자가 다람쥐를 잡아 발로 쿵 밟고 꼬리를 자르고 아직 살아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가방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았다. 그 기뻐하는 몸짓으로 보아 저녁으로 먹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환한 아파트 빌딩과 저녁으로 먹으려고 다람쥐를 밟는 주민을 조화시키기는 어려웠으나, 그것이 DPRK의 역설이다.”(356~357쪽)

우리나라는 1998년에 방문했지만 안타깝게도 크게 소개되지 않았다. 다만 일본, 인도, 중국, 싱가포르와 함께 인상적인 ‘학교운동장’을 가진 나라라고 말한다. 교육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청년이 노인이 된, 그 긴 시간 동안 포델은 그야말로 ‘사서’ 고생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 무모하고도 파란만장했던 도전을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하고, 흰머리도 더 적게 났을 것이다. … 하지만, 결국 나는 세상이 나눠주는 카드로 게임을 할 수 있었고, 살아서 196개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497~498쪽)

◇잠시멈춤, 세계여행

 오빛나·배용연 지음/ 중앙M&B 펴냄/ 552쪽/ 1만9800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살고 있던 집을 정리해 경비를 마련하고, 약 2년 동안 세계를 떠돌며 여행한다. 누구나 꿈꾸지만 그 누구도 선뜻 실천할 수 없는 로망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2012년 9월부터 2014년 5월까지 636일간 52개국을 여행한 자발적 백수 부부의 ‘무한도전’기다. 

그들은 ‘어린왕자’ 속 바오바브나무가 있는 섬 마다가스카르에도 가고, 스쿠버다이빙·서핑·스노클링을 즐기며 원 없이 바다를 탐했다. 남아공 사파리에선 코끼리의 습격을 받기도 했으며, 멕시코 국경에서 종이가 없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이 거부돼 미아가 될 뻔도 했다.

무수한 경험을 통해 그들은 겸손한 여행자가 돼 갔고, 그렇게 한층 더 성숙해졌다. 그리고 자신들이 배운 소중한 경험을 이 책을 통해 공유하려 한다. 

“건강과 행복과 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 돈이나 명예가 우리 삶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 노력하는 현재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줄 거라는 것. 이 당연한 것들을 온몸으로 깨닫기 위해 우리는 1년9개월이라는 시간과 9000만원이라는 돈을 투자했다. 정확한 수익률을 계산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장담할 수 있다. 우리 인생 최고의 투자였다고.”(524쪽) 

본인을 ‘기록주의자’라 말하는 저자답게 책 곳곳에 꼼꼼한 여행기록과 알면 좋을 팁들이 가득해 여행정보 책으로도 손색없다.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

 빼빼가족 지음/ 북로그컴퍼니 펴냄/ 352쪽/ 1만5000원

 모두의 몸이 말라서 ‘빼빼가족’이라 불린 가족이 있다. 이것만 빼면 지극히 평범했다. 아버지는 회사 일로 바빴고, 어머니는 집안일에 시달렸으며, 아이들은 새벽밥 먹으면서 학교에 다니느라 고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가족 모두가 모여 앉아 밥을 먹으며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세 아이도 이에 동의했다. 그렇게 이 가족은 특별한 결심한다.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기로.

살던 집을 판 이들은 내부가 4평 남짓한 미니버스 ‘무탈이’를 타고 동쪽 끝 대한민국 간절곶에서 서쪽 끝 포르투갈 호카곶까지, 그 누구도 일주하지 않았다는 ‘신 실크로드 아시안 하이웨이(아시아 32개국의 도로 연결망)’를 달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선물해준 러시아 바이칼 호수, 오로지 빼빼가족만을 위한 감동의 연주회가 열렸던 핀란드의 바닷가 마을 코콜라, 부모·자식이 삶과 죽음에 관해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었던 스웨덴 웁살라의 우드랜드, 묵묵히 걸어가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말은 통하지 않아도 어떻게라도 도움을 주려 했던 중앙아시아의 선한 사람들….

빼빼가족이 유라시아 25개국 163개 도시에서 광활한 자연과 각양각색 사람들을 마주하며 느낀 감동이 포토에세이와 함께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