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봉] 매맞는 남편들

어느 정형외과에 꽤 표나게 얻어터진 너댓명의 환자들이 한 방에 입원해 있었더란다. 누구는 팔을 깁스했고, 또 어느 누구는 다리를 역시 깁스해 움직이지 못하도록 윗줄로 고정시켜놓고 있었고, 또 누구는 눈탱이가 밤탱이 된 것도 모자라 눈 아랫 쪽으로 찢어져 네 바늘이나 꿔맨 채 싸매고 있었고, 또 누구는 오른 쪽 얼굴이 통통 부어오늘 채 아래 입술이 되게 찢어져 역시 서너 바늘 꿔맨 후 거즈를 바르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귀가 찢어져 역시 꿔맨 후 거즈를 몽땅 붙이고 있어 마치 한 쪽만 당나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더란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모두가 보호자들이 없이 그냥 환자들만 침대에 누워서 맥없이 TV만 보면서 히죽거리더라는 것이다. 마침 식사시간이 돼 밥을 겨우 먹고는 서로 신세 한탄에 들어갔는데, 이들이 나눈 얘기가 너무 기막혔더라.
팔을 깁스한 남자가 다리를 깁스한 남자에게 왜 다쳤느냐고 묻자, 첫번째 환자 왈, "나누라가 나가길래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왜 상관하느냐면서 이렇게 떄립디다. 그헌데 형씨는 어떻게 하다가 여기에 왔수?" 그러자 팔을 깁스한 남자 왈 "나하고 똑 같네, 나는 여편네가 밥을 안 주길래 밥좀 달라고 했더니 감히 나 한테 밥달라고 하냐면서 팔을 비틀어 이렇게 다쳤죠."하고는 마침 옆에 누워있는 눈탱이가 밤탱이된 환자에게 머리를 향하더니 "아저씬 왜 다쳤슈?"하고 묻었다. 이에 눈탱이가 밤탱이된 아저씨가 씩 웃으며 입을 열어 한다는 소리가 "얼래, 다들 마누라 한테 맞았나베. 나도 마누라 한테 얻어터졌지, 아 글쎄, 아침에 눈 떳다고 패더랑게. 그냥 날더러 눈 뜨지 말고 영원히 눈 감고 있으라는겨. 근디 눈떠지는 게 내 맘대로 되는건 아니잖녀? 아침에 눈 떴다고 패는디 할 말 없더만 그려."
그러나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말을 하면서 이들은 신기하게도 누구하나 분기탱천, 화를 내지 않고 그냥 바보들 처럼 비실비실 웃으며 마치 당연지사 처럼 말들을 하고 있었으니.... 이른 바, 여성상위시대, 아니 남편 매맞는 시대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주역 가인괘(家人卦) 단전에 참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부 부부(夫夫婦婦)'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남편은 남편다워야 하고, 아내는 아내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처구니 없게도 시대가 바뀌어 남편은 남편답지 못하고 아내는 아내답지 못한 세상이 됐으니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서재철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