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니야, 아닐세. 허허허. 당골래 말하는데 부정 타게 괜히 끼어들었어, 허허허.”

“좋지 않습니까?”

강용대의 질문에 신동댁은 그렇다 안 그렇다 즉답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렸다. 

“좋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좋지 않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운명이라는 것이 본인의 선택으로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는 건 아니니까…….”

옆에 앉아 있던 연기댁이 끼어들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마음 가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봐요. 천지신명께서 내리신 운명이라는 것을 우리가 거부할 수 없고, 또 어떤 뜻이 있으니까 그렇게 가도록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아니겠어요.”

신동댁과 연기댁은 나온 점괘를 이리 말 붙이고 저리 말 붙여 윤색해서 하긴 했지만, 어쨌든 좋은 점괘가 나온 건 아니라는 걸 앉아 있는 모두는 알 수 있었다. 

1950년 정월과 대보름 바쁜 시절을 보내고, 막 봄이 시작되면서 명희는 남준과 함께 남준의 집에서 강병도에게 장구를 배웠다. 올해를 끝으로 학교를 졸업하면 남준과 명희는 무업에 뛰어들 준비를 해야 했으므로 무업에 필요한 기예를 배우는데 더 집중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너무 열중하다보니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어서야 장구 공부가 끝났다. 남준은 명희를 바래다주려고 같이 집에서 나왔다. 

하늘이 맑은 탓인지 초저녁부터 달도 없는 하늘 저 멀리에 은하수가 펼쳐져 있고 주변으로 수많은 별들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가끔 별동별이 사선을 그으며 떨어져 내렸다. 바람은 시렸지만 추울 정도는 아니었다.  

“춥지 않아?”

“아니.”

그러면서도 명희는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남준은 명희의 어깨를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추울 땐 이렇게 붙어 있는 게 최고야.”

“어른들이 보면 어떡하려고 그래.”

명희는 남준의 팔을 털어내려 했다. 

“어떡하긴 어떻게 해. 우린 혼인할 사이인데. 히히히.”

남준은 아예 양 팔로 명희를 끌어안듯 꼭 안고 걸었다. 명희는 답답하다며 남준의 한쪽 팔을 떼어냈다. 하늘의 별들은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부끄러운지 얼굴들을 붉히며 더 반짝거렸다. 

“우리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나서서 굿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앞으로 다른 마을도 굿을 못하게 하면 어쩌지?”

“못하게 하는 건 공산주의 때문이잖아. 우리나라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야. 그럴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대우 아저씨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곧 여기도 공산주의 국가가 될 거라는 거야.”

“그럴 일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자.”

남준은 명희의 어깨를 감싼 팔에 더 힘을 주며 명희를 다독였다. 

시국이 몹시 시끄러운 탓에 명희의 걱정을 남준도 느끼고 있었지만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에서 이렇게 가벼운 봄바람을 맞으며 명희와 함께 밤길을 걷는 이 행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다. 

남준과 명희가 막 황전마을 어귀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마을로 접어드는 오른쪽은 야산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야산에서 남자 하나가 주변을 살피며 걸어 내려오는 게 보였다. 

등에는 배낭을 메고 철모를 썼고 손에는 장총을 들고 있었다.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는 명희의 입을 남준은 얼른 막으며 끌어안고 급히 몸을 낮췄다. 

남준의 머리로 스쳐가는 게 있었다. 여수 순천에서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갔고 일부는 각지로 흩어졌는데 어디에서 출몰할지 모르니 발견하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이었다. 

골목길로 접어들기 전에 몸을 낮춘 군인은 사방을 살피더니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사주경계를 하면서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오상근 / 본보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