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희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명희는 남준의 팔에서 빠져나오려고 몸을 틀었다.

“너무 답답해…….”

남준의 몸에서도 명희와 똑같은 물리 화학 반응이 일었는지 스르르 팔을 풀고는 눈을 얼른 다른 데로 보냈다.

“오늘 굿했던 혼들 말이야, 참 안 되었지?”

“그러게, 너무 안 되었어.”

“우린 얼마나 좋아, 히히히.”

남준은 명희의 눈치를 살피며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었다. 왜 그러냐는 눈으로 명희가 남준을 바라봤다.

“우리는 부모님이 적극 찬성했으면 했지 반대는 안 하실 거잖아, 안 그래? 히히히.”

“뭘?”

명희는 모르는 척 남준을 빤히 쳐다봤다.

“뭐긴 뭐야. 우리 혼인하는 거 말하는 거지. 히히히.”

“뭐어? 누가 너하고 혼인한데? 흥!”

명희는 새침한 눈으로 남준을 흘겨본 뒤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너는 나하고 혼인 안 할 거야?”

남준은 얼른 양손으로 명희의 팔을 잡고 명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이, 왜 이래? 답답하게…….”

남준은 명희를 다시 꼭 끌어안았다. 명희는 가만히 남준의 품에 안겼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고 남준과 명희는 전날 굿을 했던 마을로 갔다.

어제 넋건지기 굿과 처녀 총각의 씻김굿을 마쳤고, 오늘은 본격적으로 망자혼인굿을 진행하여 굿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남준과 명희는 부모님들을 거들어 무구와 악기들을 집까지 날랐다.

“남준이 명희도 나이만 차면 얼른 혼인을 시켜야겠지?”

숲길 바위에 잠시 앉아 땀을 식히면서 박규환이 강병도를 돌아보며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강병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아버지들의 말을 듣고 있던 남준과 명희는 얼굴이 벌게졌다.

“어머, 애네들 얼굴 빨게지는 거 봐요, 호호호.”

연기댁이 재미있다는 듯 남준과 명희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래도 안 한다는 소리는 안 하네, 호호호.”

신동댁도 장난기 어린 웃음을 웃으며 남준과 명희를 바라봤다.

다음날 남준은 학교에 갔다가 복도에서 네 명의 아이들과 마주쳤다. 남준과 같은 마을인 봉림에 사는 강정근과 강민석, 박명희가 사는 황전에 사는 박주성과 박창수였다.

국민학생 때와는 달리 아이들은 남준을 얕잡아보는 추세는 아니었으며 당골래 자식이라 놀리는 아이도 없었다.

“남준아, 너 우리 동네가 얼마나 양반 동네인지 알고 있지?”

네 명 중 강정근이 남준을 발견하고는 응원군을 만났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남준은 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우리 동네는 말이지, 예부터 양반이 살았던 동네라고. 벼슬도 많이 하고 말이야. 지금도 그렇잖아. 면서기 하시는 분도 계시고 학교 선생님도 계시고 경찰관도 있고 또 군인도 계시고, 우리 삼촌도 군에 계시는 공무원이잖아, 안 그러냐?”

강정근이 남준과 다른 세 명을 번가라 쳐다보며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맞아. 봉림은 말이야 원래 양반동네라고. 황전 봐라. 온통 농사꾼뿐이잖아.”

옆에 있던 강민석도 말을 보탰다. 강민석도 남준과는 먼 친척뻘 된다. 박창수와 박주성은 풀이 죽어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우리 삼촌이 봉림에는 일제에 부역하는 친일을 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민족정신이 썩은 동네라고 했어!”

박창수는 눈을 부라리며 강정근에게 일갈했다. 강정근은 박창수의 눈을 피했다. 강정근의 삼촌 강용대는 실제로 일본 군대에 입대하여 복무한 적이 있었다.

“요즘 그 동네에서 좌익이다 뭐다해서 말들이 많다면서? 여수에서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과도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하던데.”

강민석이 아니꼬은 듯 박창수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박창수의 삼촌 박대우는 남로당 무장 책임자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안 그래…….”

박주성이 겁먹은 얼굴로 좌중을 살피며 말했다.

“우리 삼촌이 머지않아 좌익이 온 세상을 차지하는 날이 온다고 했어!”

박창수는 뭐가 화가 났는지 붉어진 얼굴로 강정근과 강민석을 바라보며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