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혼한테 무슨 사연이 있어요?”

강병도와 박규환이 저만치 앞서가고 네 사람이 뒤처졌을 때, 명희가 연기댁에게 물었다.

“처녀가 먼저 물에 빠져 죽고, 총각이 그 뒤를 따랐다고 하는구나.”

총각과 처녀는 같은 마을에 살았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나이가 차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몰래몰래 방앗간이나 저수지 숲에서 만나곤 했다는 것이다.

총각 아버지는 총각이 어렸을 때 이미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오는 이웃동네 친구의 딸과 결혼시키기로 약속을 해놓았다.

총각 아버지와 어머니가 총각에게 아버지 친구 딸과의 결혼을 말하자, 총각은 같은 동네에 사모하는 처녀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총각이 아버지 친구 딸과의 결혼을 완강히 거절하자 총각의 부모는 일단 총각이 사귀는 처녀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총각이 사귀는 처녀는 총각의 선대들이 묻힌 선산을 지키는 묘지기의 딸이었다. 아무리 반상이 무너진 지 오래라고 해도 산지기 딸과 결혼을 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총각의 가족만 달랑 외톨이로 떨어져 살면 그냥 눈 딱 감고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변에 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었다.

선산을 둔 집성촌에 살다보니 동네사람 모두가 일가친척이나 다름없어 그들의 눈과 말들을 부모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도망가서 살면 되잖아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면 되잖아요.’

총각은 울먹이며 절절하게 애원했다. 총각의 부모도 차라리 총각의 말대로 그렇게라도 해주면 어떨까 싶었다. 총각의 부모는 산지기인 처녀의 부모를 만났다.

그러나 오히려 처녀의 부모가 총각과의 혼인을 모질게 반대하고 나섰고, 딸을 골방에 가뒀다는 것이다.

처녀의 부모만 찬성하면 총각 말대로 어디 멀리 가서 살 수 있도록 해주려 했지만 처녀의 부모가 쌍수를 들고 반대하는 바람에 어찌해 볼 수 없었다.

또 어떻게 설득 당했는지 총각이 처녀를 만나려고 하면 일부러 처녀가 총각을 피했고, 억지로 만나면 서로 만나지 말자고 처녀가 총각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총각은 처녀와의 인연이 여기까지구나 싶어 모든 걸 포기하고 아버지 친구의 딸과 혼인을 하기로 마음먹고 혼인 날짜를 잡고 약혼식까지 치렀다.

그런데 약혼식이 있던 날, 처녀가 총각과 밀애를 즐겼던 구암저수지 상수리나무에 목을 매버린 것이었다.

총각은 충격에 정신을 놓아버렸고 며칠 뒤에 저수지에 몸을 던져버렸다. 비가 오던 날 억겁으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저수지 주변을 맴돌던 총각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며칠 뒤에 총각의 몸은 저수지에서 떠올랐던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처녀가 총각을 데려간 것이라고 말들을 했다.

“원래 혼인굿은 집안에 누군가 아프고 우리 당골래가 점을 봐서 원인이 죽은 처녀와 총각이라는 걸 밝혀내면 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번 경우는 그런 것 없이 먼저 총각 부모가 나서서 해주는 것이라는 구나.”

마을에 도착하여 굿을 준비하는데 약간의 협의가 필요했다.

“아직 혼을 방죽에서 건지지 않았단 말이요?”

호수에 빠져 죽은 총각의 넋을 건져내는 굿을 한 뒤에 영혼 혼인굿을 진행해야 하는데 넋건지기 굿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혼령도 없는데 어떻게 혼인식을 한단 말이요. 넋을 건져낸 후에 혼인을 하든 해야지요. 처녀는 씻김굿을 했습니까?”

처녀의 부모도 송구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처녀 총각의 부모와 신동댁 내외, 연기댁 내외는 한참 숙의를 거듭했다.

하루를 예정했던 굿을 이틀로 늘리고 먼저 넋건지기와 씻김을 한 뒤에 혼인굿을 진행하기로 하였고, 모든 절차를 다 갖출 수는 없고 약식으로 넋건지기와 씻김을 한 뒤에 다음날 혼인식을 거행하기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