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서남권이 오랜 기다림 끝에 변화의 문턱에 섰다.
지난 10일 고창신활력산업단지에서 열린 ‘고창 스마트 허브단지’ 착공식은 삼성의 단순한 사업 개시가 아니었다. 그동안 전북이 갈망해 온 대규모 기업 투자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역 산업 생태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실질적 계기가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날 행사에는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와 심덕섭 고창군수, 그리고 삼성전자 박순철 부사장을 비롯해 1,000여 명의 도민이 함께했다. 지역과 기업, 행정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그만큼 이 사업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방증이다.
삼성전자가 총 3,500억 원을 투입해 18만㎡가 넘는 높은 규모의 초대형 물류센터를 건립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전북 서남권의 변화 가능성은 충분히 감지된다.
2027년 완공될 이 스마트 허브단지는 자율이동로봇과 자동보관·회수 시스템이 도입된 첨단 물류단지다.
물류 전 과정이 자동화·지능화되는 구조 속에서 지역의 산업 기반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건설·장비·자재 등 지역 업체의 참여가 자연스럽게 확대되며 지역경제에 온기가 돌 것으로 기대한다. 완공 후 조성될 500여 개의 직·간접 일자리 역시 지역민에게 큰 희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기대감에는 한편의 아쉬움과 조심스러운 마음도 공존한다. 2011년 김완주 전 지사 시절, 삼성은 새만금에 7조 6천억 원 규모의 그린에너지 종합 사업간지를 조성하겠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풍력·태양전지·연료전지 등 미래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투자가 발표되면서 전북은 환영 현수막을 걸고 ‘삼성과 함께하는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그 사업은 끝내 이행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전북 도민이 느꼈던 허탈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대기업 투자가 유독 비껴가는 전북경제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삼성의 고향 투자 무산 이야기는 투자에 목말라하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고향 진주에 공장을 세워 지역 경제를 돕고자 했지만, 당시 진주 지역 유림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 일로 삼성은 다시는 고향에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도 전해진다.
이런 배경은 전북 도민들이 삼성의 이번 전북에 대한 ‘첫 투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며, 전북 도민들은 삼성의 이번 투자에 많은 기대를 하고 환영한다.
전북은 지금도 대기업 투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산업구조가 취약한 지역에서 양질의 일자리와 미래산업 기반을 확보하는 길은 결국 기업과 전북 도민의 동반성장을 통한 상생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간 많은 대기업이 전북을 스쳐 지나갔다. 대우자동차 공장과 현대중공업이 공장을 설립하고도 중도에 포기하여 전북도민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안겼다,
삼성의 경우도 그간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정도를 제외하면 생산 공장 하나 없는 현실은 도민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겼다. 하지만 동시에 “이번만큼은 달라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고창 스마트 허브단지 착공은 바로 그 변화의 신호탄이다. 전북이 더 이상 기업 투자의 주변부에 머물지 않고, 국가 균형발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도민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번 투자가 단순한 물류센터 건립에 그치지 않고, 제조업·에너지·신산업 전반으로 확대된다면 전북은 마침내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성장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의 투자는 지역의 미래를 바꾸는 힘을 갖는다. 전북은 그 기회를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첫걸음에 머무르지 않는 삼성의 ‘두 번째, 세 번째 큰 걸음’이다.
기업의 결단 위에 지방정부의 안정적 지원이 더해질 때, 전북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지도의 새로운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다.
전북 도민들은 이번 투자가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전북을 향한 삼성의 진정한 귀환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전북이 국가균형발전의 모범 지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번 착공식이 바로 그 미래를 여는 첫 관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만호 / 본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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