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동식은 불만이다. 박창수는 동식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하이에나 같은 짐승으로 취급하고 있다.

동식에게 박 앞에서 엎드려 자신의 신발을 혀로 핥으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혐오스러운 불쾌감이, 동식의 마음속을 긁어댔다. 돈봉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막말로 사람을 죽이면 댁이나 나나 공범이 될 텐데, 공범끼리 이유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요? 내가 무슨 소나 돼지를 잡는 백정이요? 사람을 죽이라면 죽이는 망나니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유를 알아야 할 것 아니요!”

“…….”

박창수는 숨을 길게 들이마신 뒤 내뱉었다.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일을 못해요! 나 말고도 누구에게 일을 시켜도 마찬가지 일거요!”

동식은 자신 쪽으로 건너온 대봉투를 박 쪽으로 밀어놓고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유를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하려다가 꾹 눌러 참았다. 마지막 자존심을 살리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가을 찬바람이 동식의 이마를 때렸다. 동식은 자신의 차 아우디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후진해서 차를 빼 마을에서 나왔다. 돌아오면서 잘한 짓인지 못한 짓인지 점수를 매겨보려 했지만 어느 쪽에 점수를 더 줘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다음 날은 봉사활동을 마치고 동식은 무장면으로 향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고창초등학교에서 봤던 ‘무장읍성놀이마당농악단’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늙수그레한 남자 둘이 앉아서 장기를 두고 있었다. 동식이 안으로 들어가자 동식을 발견한 중노인이 졸을 앞으로 밀려다 멈추고 굳은 눈으로 동식을 바라봤다. 농악단 사무실은 건달이 찾아올 곳이 못 되는 모양이다.

“무슨 일로다가……?”

“말씀좀 물어보려고 하는데요.”

동식은 최대한 웃는 얼굴을 하려고 애썼다. 두 중노인은 동작을 멈추고 시선을 동식에게로 모았다.

“여기 혹시 강정근 씨라고…….”

중노인 둘은 경직된 눈들을 풀지 않았다.

“근디…… 무슨 일로…….”

졸을 잡고 있던 중노인이 여전히 경계하는 눈으로 물었다. 동식은 몸 안에 있는 부드러움과 웃음을 있는 대로 다 끌어다가 얼굴에 담고 공손하고 다소곳하게 강정근 그분에게 동식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물어보려고 찾는다는 말을 했다.

늙수그레한 남자 둘은 동식의 말을 듣고 서로를 쳐다봤는데 강정근의 주소지나 연락처를 알려줘도 되는 것인지를 눈짓으로 교환하는 듯 보였다.

“저 월림 봉림마을 사는디. 거 봉림마을 회관에서 물어보면 알 턴디.”

등을 보이고 있던 중노인이 말했다.

“전화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전화번호? 가만히 있어보자.”

졸을 잡고 있던 중노인이 책상 서랍에서 장부를 꺼내 뒤적거리더니 번호를 불러줬다.

동식은 두 중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넣었다. 동식은 지난번 농악경연대회에서 만났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강정근에게 소개했다.

‘누구라고?’

기계음에 섞인 강정근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소음 때문에 동식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한 모양이다. 동식은 다시 큰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고, 만나서 물어볼 말이 있다고 말했다.

“아하, 그 사람……. 지금 내가 논에 나와 있는디, 저녁에 집에 들어갈거여. 글먼, 집으로 와.”

강정근도 동식을 기억한 모양이다. 왜 당신이 나를 만나자고 하느냐, 무엇을 물어보려 하느냐, 따져야 하는데 그는 그런 말을 모두 생략했고 대신 동식을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도 동식에게 뭔가를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