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HPV(인유두종바이러스) 국가예방접종(NIP) 예산을 확대하고 12세 남아를 무료 접종 대상에 포함한 가운데, 국회에서 고품질 백신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5일 박희숭·백혜련·김남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평가하면서도, 현행 4가 백신 중심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며 '9가 백신'으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토론회에서 이재갑 교수(한림대 강남성심병원)는 "미국에서는 4가 백신 판매가 이미 중단됐다"며 한국도 9가 백신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상락 교수(가톨릭의대)는 남성 건강권 보장 차원에서도 예방 접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한국인에게 흔한 HPV 52형과 58형이 기존 4가 백신으로는 예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경진 교수(고려대 안산병원)는 전 세계 자궁경부암의 약 90%가 9가지 HPV 유형에 의해 발생한다고 지적했으며, 이세영 교수(중앙대병원)는 국내 HPV 감염 여성의 높은 52·58형 유병률을 언급하며 9가 백신만이 암 예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 자궁경부암의 약 36.7%는 4가 백신으로 예방할 수 없는 유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HPV 국가예방접종 현황은 선진국과 비교해 매우 뒤처진 수준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OECD 29개국 대부분이 남녀 모두에게 9가 백신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4가 백신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한국보다 2년 늦게 접종을 시작한 대만조차 올해 9월부터 중학교 2학년 남녀에게 9가 백신을 지원하며 한국을 앞서갔다.

또한, 지난해 기준 남아의 접종률(0.2%)은 여아(79.2%)와 약 400배의 격차를 보이며 성별 불균형 문제도 심각하다.

임동훈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장(조선대병원)은 "정부의 예산 증액과 남아 접종 포함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면서도, "한국의 특수한 유병률을 고려할 때 9가 백신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녀 모두에게 9가 백신을 지원하고 접종 연령을 확대하여 국가 차원의 암 예방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이만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