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서씨> 신라말 아간대부 지낸 서신일이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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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서씨> 신라말 아간대부 지낸 서신일이 시조
<이천서씨> 신라말 아간대부 지낸 서신일이 시조
기사입력 2011-03-30 오후 8:03:00 | 최종수정 2011-03-30 20:03

고려시대 강동 6주 완성 탁월한 외교관 서희
   청산리 싸움 승리 기여 독립운동가 서일 유명

 시조 서신일(徐神逸)은 신라 52대 왕인 효공왕(재위기간:897~912) 때에 아간대부(阿干大夫)를 지내다가 나라의 운이 다함을 알고 이천 효양산에 복성당을 짓고 은거하면서 자칭 처사라 하고 후진 양성에 여생을 바쳤다. 그래서 후손들이 은거지인 이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묘소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효양산에 있으며 음력 10월 1일에 향사 한다.

 시조에 관해서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의 처음 조상인 서두라(徐豆羅.신라 개국공신)는 아성(阿城:이천의 옛 이름) 대장군으로 있었다. 서신일 대에 이르러 산촌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사슴 한 마리가 화살을 맞은 채 사냥꾼에게 쫓겨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화살을 빼주고 먹이를 주며 극진히 간호해 준 다음 산으로 놓아주었다. 그날 밤 꿈에 백발의 산신령이 나타나서 "오늘 그대의 집에 왔던 사슴은 나의 자식으로 사냥꾼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대의 은덕으로 살게 되었으니 그대의 자손이 대대로 재상을 지내리라"고 했다.

 나이 80이 되도록 슬하에 혈육이 없던 그는 그날부터 부인의 몸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 그가 정민공(貞敏公) 서 필(徐弼)이요, 서 필의 아들이 바로 유명한 서 희(徐熙) 장군이다.

 서 희(942~998)는 고려 초 요나라의 침략 당시 뛰어난 외교력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고려는 태조 때부터 국경을 맞대고 있는 거란족의 국가 요를 배제했다. 대신 중국 후진, 후주와 친교를 맺어왔다. 북쪽은 여진과 거란에 가로막혀 해상으로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서 희는 바다 건너 송나라에 가서 단절된 외교를 회복했다. 이를 빌미삼아 993년 요나라의 80만 대군이 고려에 쳐들어왔다. 거란족은 몽골계 유목민족이다. 당나라 때 강력한 힘을 가진 8개 부족이 연합하여 큰 세력을 이루었다. 추장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몽골 및 만주 지역에 흩어져 있던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나라를 세웠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 이후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한다는 명분 아래 북진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면서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와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소손녕의 요나라 대군은 단숨에 봉산군까지 내려와 고려의 항복을 요구했다. 고려 조정에서는 서경 이북의 땅을 요나라에 내어주자는 할지론(割地論)을 펼쳤다.

 이때 정면으로 반대한 사람이 서 희다. "저들이 고구려의 옛 땅을 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사실은 우리 고려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경 이북의 땅을 내놓는 것은 결코 올바른 계책이 아닙니다."

 서 희는 요나라 군사들이 계속해서 항복만을 요구해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의 속셈을 간파할 수 있었다. 고려가 항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소손녕은 안융진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요나라는 이 전쟁에서 대패한다.

 소손녕의 속셈을 꿰뚫고 있던 서 희는 적진으로 나아가 담판을 짓게 된다.  소손녕은 "고구려 땅은 예로부터 우리의 것이었다. 또한 고려는 요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도 멀리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고 있기에 부득이 공격을 하게 되었다."

 서 희는 반박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였으므로 국호 또한 '고려'다. 그대의 나라와 고려가 국교를 맺지 못하게 된 것은 모두 여진족 때문이다. 여진족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은 뒤 성을 쌓고 길을 열면 어찌 국교를 맺지 않겠는가!"

 소손녕이 내세운 침략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고려와 송나라의 동맹관계를 단절시키고 고려를 복속시키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압록강 동쪽 평안도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사전에 고려의 도전 의지를 꺾어 놓겠다는 의도였다.

 서 희는 요나라의 근본적인 침략 목적은 고려와 송나라의 국교 단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반박과 설득을 통해 요나라에게 철군 명분을 주었다. 소손녕은 마침내 철군하게 된다.

 그러나 여진이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이상 완전한 고려의 땅이 아니었다.  서 희는 압록강 동쪽 280리의 개척에 나서 여진족을 몰아내고 3년 만에 강동 6주를 완성하였다.

 서 희의 아들 4형제 중 맏아들 서 눌은 성종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형부시랑이 되어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그 뒤 상서이부시랑을 거쳐 국자제주(國子祭酒:교육기관의 종3품 벼슬)에 이르렀다. 딸이 왕비가 되자 덕종 초에 검교태사가 되고 이어 문하시중에 올랐다.

 고려 인종조에 동지추밀원사를 거쳐 평장사에 오른 서 공은 서 눌의 증손이다. 그는 담력이 크고 지략과 무예에 뛰어나 당대에 명성을 떨쳤으며, 문신의 교만함을 탄핵했다.

 예빈시윤 서 찬의 둘째 아들인 서 견은 안 향의 문하에서 글을 배워 공양왕 초에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조선 세종 때 우군도총제를 지내고 우의정에 추증된 서 선과 연산군 때 대사간을 역임한 서 지, 대사성 서 강도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좌부장으로 함흥ㆍ홍원 전투에서 공을 세운 서경충과 호조참의 서사적(徐思迪)은 선무원종일등공신에 올라, 수군첨절제사를 지낸 서덕룡 등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서 일은 독립운동가로서 1911년 만주 간도에서 명동중학교를 설립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중광단을 조직하였고 김좌진 등과 북로군정서를 설치, 1920년의 청산리 싸움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대한독립군단이 결성되었을 때 총재가 되기도 했으나 흑하사변에서 청년 다수가 희생되자 이에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천서씨의 현대 저명인사들은 ▲서민호(전 국회부의장) ▲서진수 (전 한국은행 총재) ▲서성우(문학박사. 미 하버드대 교수. 전 성균관대 총장) ▲서경보(철학박사. 전 동국대 총장) ▲서향순(양궁 국가대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서영택(전 국세청장) ▲서성환(태평양그룹 총수)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서백윤(徐百倫, 1859 己未生) : 문과(文科) 고종24년(1887) 함경도도과 갑과(甲科) 장원급제, 서극일(徐克一, 1859 己未生) : 문과(文科) 명종1년(1546) 식년시 병과(丙科), 서지보(徐志輔, 1771 辛卯生) : 문과(文科) 순조10년(1810) 식년시 을과(乙科), 서학문(徐鶴聞, 1823 癸未生) : 문과(文科) 철종9년(1858) 별시 을과(乙科), 서형(徐逈, 1823 癸未生) : 문과(文科) 세종26년(1444) 식년시 정과(丁科), 서휘(徐彙, 1737 丁巳生) : 문과(文科) 영조47년(1771) 정시 병과(丙科), 서상태(徐相泰, 1825 乙酉生) : 문과(文科) 고종13년(1876) 식년시 병과(丙科), 서산보(徐山甫, 1825 乙酉生) : 문과(文科) 성종17년(1486)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01명이다.

 집성촌은 경기도 이천군 부발면 일원, 경북 군위군 군위읍 수서1동. 대북동,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오산리, 전남 곡성군 곡성읍 구원리. 신기리, 경북 경주시 현곡면 하구2리 서당골 등이다.

 전북 정읍시 이평면 마항리, 전남 보성군 벌교읍 영동리, 전남 무안군 일원, 전남 함평군 학교면 일원, 전남 나주시 봉황면 각동리 마동. 안골. 수각. 철천리, 함남 홍원군 일원, 충북 옥천군 청성면 화동리 등도 있다.

 주요파는 ▲문한공파 ▲사인공파 ▲공도공파 ▲비인공파 ▲시랑공파 ▲사직공파 ▲전서공파 ▲예빈공파 ▲평장공파 ▲판서공파 ▲부사공파 ▲부령공파 ▲참봉공파 ▲소윤공파 ▲절효공파 ▲양경공파 ▲창사공파 ▲현령공파 ▲교리공파 등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172,072명이다.
/언론인·성씨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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