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풍성한 혜택 제공 뒤 수익성 악화되자 발급중단

전주 서신동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27·여)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지인으로부터 혜택이 많은 신용카드가 최근 출시됐다는 얘길 듣고 2주 후 은행을 방문했더니 해당 카드 발급이 이미 중단 됐다는 것이다.
은행 직원은 해당카드 대신 혜택이 다소 떨어지는 비슷한 신용카드를 권유했다. 결국 김씨는 카드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허탈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바야흐로 '알짜카드' 종말의 시대다. 카드사들이 혜택을 축소하는 것을 넘어 아예 카드상품 자체를 없애고 있어서다.
KB국민카드는 올해 들어 알짜 신용 카드에 대해 '사정의칼'을 빼들었다. 올 해에만 '골든라이프, 훈민정음' 시리즈 등 13종의 신용카드를 시장에서 철수했다.
출시한지 1년도 안돼 단명한 카드도 있다.
NH농협카드는 4월 '올원시럽카드'를 출시해 8월 말까지 18만좌를 돌파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카드 사용액에 따라 최대 5%에 해당하는 쿠폰을 현금처럼 쓸 수 있다는 혜택 이 소비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고객들의 쿠폰사용 비율이 예상보다 높아 적자폭이 커지자 결국 출시 6개월 만에 카드발급 중단을 선언하고 말았다.
신한카드는 기존 카드를 없애고 혜택을 크게 줄인 똑같은 이름의 카드를 내 놓는 꼼수를 썼다. '알피엠(RPM)카드'는 전월실적과 관계없이 모든 주유소에서 1ℓ당 100원씩 적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한카드는 '알피엠카드'를 없애더니 플러스(+)만붙여 '알피엠 플러스카드'를 슬그머니 내놨다. 플러스가 붙은 이름과 달리 '전월실적이 100만원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조항을 따로 붙여 혜택을 축소시켰다.
하나카드는 일방적으로 상품 혜택을 축소하고 발급을 중단하려다 계획이 무산됐다. 이를 안 고객들이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나카드가 출시한 '크로스마일카드'는 여행 마니아들에겐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카드다. 1500원을 이용할 때 마다 2마일의 항공마일리지가 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카드 역시 연간 수십억원의 적자가 나자 하나카드는 2013년 마일리지를 1.8마일로 변경한다는 공문을 인터넷에 띄웠다.
이에 반발한 40만명의 회원들이 집단소송을 걸었고, 결국 올해 3월 "줄어든 마일리지를 소급해 원상복구하고 혜택은 계속유지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이처럼 카드사들이 사활을 걸고 알짜 카드를 없애려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금융 당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전업 카드사의 순이익은 948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1조877억원)과 견줘 12.8% 감소했다. 늘어나는 포인트 적립비용과 무이자 할부비용이 경영악화에 영향을 미치자 카드사들이 혜택이 많은 카드들부터 정리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 상품혜택 유지 의무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나 혜택을 줄이는 것이 어려워지자 카드사들이 아예 단종시키는 방법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게 업계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카드사들의 '불친절한' 혜택 축소, 단종 등으로 고객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데도 금융감독원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시중의 카드상품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고 있는지, 왜 단종이 되었는지에 대한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카드사들이 고객 유치에만 혈안이 돼 이른바 '낚시성' 상품을 찍어내고 있다"며 "카드상품 설계시점에서 소비자의 카드사용 행태 변화, 경기변동 예측을 면밀히 분석해 최소 5년 이상 혜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안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