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든다. 바람은 풍(風)이기에 손길, 눈길만 닿아도 흔들린다. 처녀총각들 겉 바람 들게 하고, 과년한 여자 춤바람 나게도 한다.

간혹 날 바람이라도 불면 궁둥이가 들 썩 들썩이고, 물 바람과 뭍바람은 사람과 사랑을 들쑤신다. 바람맞은 총각은 맞바람(마파람)을 피우고, 갯바람은 뱃사공의 술추렴을 부추긴다.

갈바람은 말라깽이의 쓸쓸한 육체를 쓰다듬고, 늦바람난 인간은 난봉 부리다 패가망신한다. 어디 이뿐인가. 식전 댓바람은 여편네와의 싸움을 부채질하고, 문틈사이 문바람은 뼈를 시리게 한다. 바람, 바람, 바람…. 정말 별종이다.

▶우리는 비열하다. 애인이 순결하길 바라면서 다른 애인의 입술을 쳐다본다. 애인이 정조를 지켜주길 바라면서 다른 애인의 순결을 훔쳐본다. 간통을 대놓고 손가락질하다가도 남몰래 손가락을 빤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애인을 탓하면서 첫사랑의 행방을 추적한다.

전화번호를 훔쳐보지 말라면서도 동시에 애인의 스마트 폰을 뒤진다. 조류(鳥類)의 80~90%가 일부일처라고 강변하면서 이슬람의 일부다처, 일처다부를 부러워한다.

에스키모인들의 아내 접대풍습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마음은 이미 북극로맨스를 꿈꾼다. 싸기만 하면 암컷을 외면하는 '아랫도리'들의 변심이 어디 한둘인가. 즐기고 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입을 싹 씻는 '암컷'들의 변절이 어디 한둘인가.

▶고대 인도에서 바람(간통)을 피우다 들통 나면 코를 베었다. 남자의 심벌을 태워 잘랐고, 쇠로 만든 남자 심벌을 불에 달구어 여성의 질 속에 넣고는 음부를 태웠다. 반면 조선시대는 간통의 전성기였다. '종년 간통은 누운 소 타기보다 쉽다’며 너도나도 여종들을 품었다.

어우동에 버금가는 스캔들로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은 유감동은 평양현감의 아내였는데 무려 39명과 간통 행각을 벌였다. 사헌부는 유감동의 죄가 중한 만큼 교수형을 주장했으나 세종은 그녀를 변방으로 귀양 보내는 것으로 종결했다.(이 대목만큼은 세종대왕도 용렬하다)

▶‘개인의 잠자리 문제에까지 법이 개입하는 것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다.’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에 위헌판결을 내렸다. 성기가 결합된 순간을 잡아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이로써 간통사범 3400명이 활짝 웃었다. 콘돔·피임약 생산업체, 발기부전치료제 제약사, 속옷업체, 여행업체, 숙박업계도 웃고 있다. ‘아랫도리’ 잘못 놀려 패가망신하던 일도, 이혼의 사유를 ‘성격 차’가 아니라 ‘성 격차’때문이라고 눌변 했던 사람들도 웃고 있다. 인간의 저열한 습성은 이미 울타리를 넘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은밀한 염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상의 모든 풀들과 야생의 꽃들이 바람과 서로 살을 섞어 흔드는 듯한…. 그래서 당신의 선택에는 바람의 냄새가 묻어있다. 바람이 부느냐. 바람이 드느냐의 문제일 뿐.

이옥수/지방부 부안주재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