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은열·공대·어사공파가 4대 봉우리 이뤄
뉴스
전체보기
사회 일반
사건/사고
법원/검찰
뉴스 홈 사회  기사목록
 
충장·은열·공대·어사공파가 4대 봉우리 이뤄
정천익-사위 문익점의 목화씨를 시배해 '물레'와 '씨아'를 창안하는데 결정적 역할
기사입력 2010-12-29 오후 8:24:00 | 최종수정 2010-12-29 20:24

정척 - 양석지와 '동국지도' 제작·정신열 - 거란 침입 격퇴 공세워 금자광록대부 올라


진주정씨(晋州鄭氏=진양정씨) 

 진주정씨 혹은 진양정씨는 정 예(鄭藝)의 충장공파(忠莊公派), 정자우(鄭子友)의 은열공파(殷烈公派), 정 장(鄭莊)의 공대공파(恭戴公派), 정 헌(鄭櫶)의 어사공파(御史公派)가 4대 봉우리다. 이들 후손들이 주류를 이룬다. 본관 진주는 고려시대에 선조들이 살아오던 곳이다. 진양군은 1995년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는 2000년 현재 238,505명이 있다.

 ▲충장공파의 시조 정 예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문하시중을 지냈다. 1세조는 고려 문종 때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정시양 이다. 정 예의 호는 백곡, 시호는 영절공이며 고려 통합 삼한벽상공신 광록대부.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냈다. 그 후 제학공 정시양까지 계대가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정시양 혹은 정시양의 아들 정 유를 1세조로 계대한다. 정 유의 6세손 또는 그 아들 정수규를 중조로 하는 파도 있다.

 정이오(1347~1434)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다. 1374년(공민왕 23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저서로‘교은집(郊隱集)’이 있다.

 문양공 정을보(文良公 鄭乙輔)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호는 면재(勉齋)다. 평장사 정 연의 아들이다. 1345년(충목왕1) 정당문학이 된 후 청천군(菁川君)에 봉해졌다. 1352년(공민왕 1) 찬성사가 되었다.

 문영공(文英公) 정 수(鄭需)는 고려 때 대제학을 지냈으며, 문영공파의 파조다. 정수규는 고려 때 정당문학을 역임했으며 시호는 영밀이다. 정천귀는 고려 때 대제학을 지냈다. 정안사는 고려 때 종지밀직사를 역임했으며 시호는 충무다. 감정공 정길보(監正公 鄭吉輔)도 후손이다.

 충장공파의 파조인 정 분은 단종 때 우의정을 지냈다. 그는 1394년 경상남도 진주 비봉산 아래 대안리에서 태어났다. 20세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좌랑, 승문원교리 등을 지냈으며 1422년(세종4년) 사간원 우헌납이 되었다.

 1443년 주문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0년 (문종 즉위년)에는 우찬성에 오르면서 전라, 경상도 도체찰사가 되었다. 1452년 단종 즉위년에 우의정에 올랐다. 당시 영의정은 황보인, 좌의정은 김종서였다. 이들은 어린 단종을 잘 보필하라는 문종의 유명을 받들고 있었다.

 정분 은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맞서 대항하다 낙안으로 귀양을 간다. 다시 광양으로 옮겨지면서 관의 노비로 전락했다. 당시 정인지는 충장공의 처남이다. 세조는 정인지를 통해 정 분을 회유했다.

 그러나 그의 지조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1년 후에 죽음을 맞는다. 이에  앞서 그의 부인은 대호군 임자번의 종으로 보내졌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정 분은 죽은 지 200년이 지난 1746년(영조22년) 김종서, 황보인과 함께 관직이 복구되었다. 1786년(정조10년)에는 전남 장흥의 충렬사에 배향되었다. 1804년(순조4년)에 충신을 표창하기 위하여 그 집 앞에 정문을 세웠다. 충장(忠莊)은 그의 시호이며 호는 애일당(愛日堂)이다.

 진주에서는 도동서원을 세워 정 분을 비롯 황보인, 김종서, 김문기 등을 배향했다. 지금은 유허비만 남아있다. 묘소는 경남 진주시 상대동에 있다. 그 옆에는 허름한 영모재가 있다. 

 ▲은열공파는 고려 때 호장을 지낸 정자우를 시조로 한다. 그의 6세손 정신열(鄭臣烈)이 고려 현종 때 유일로 천거되어 여러 청환직을 거친 후 병부상서에 올랐다. 거란의 침입을 격퇴시킨 공으로 금자광록대부에 올라 진양부원군에 봉해졌다. 선주지사 정임덕(鄭任德)의 아들 정 유(鄭愈)는 아우 정 손(鄭孫)과 함께 효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판부사가 되었던 정천익(鄭千益)은 당시 난정을 개탄하여 벼슬에서 물러났다. 향리로 돌다가 퇴헌정(退軒亭)을 짓고 자적하다가 사위인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오자 이를 시배(始培)하여‘물레’와‘씨아’를 창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자우의 8세손으로 중랑장을 지낸 정진경을 중조로 삼는 파도 있다. 고려 때 첨정을 지낸 정중공을 시조로 하는 첨정공파도 있다. 정기룡이 유명하다.

 ▲공대공파의 시조 정 장은 고려 말에 통정첨지를 지냈다. 그의 4세손 정 척(鄭陟)은 조선 태종 때 판윤을 지냈다. 공대공 정 척을 중조로 삼는 파도 있다. 세종 때 명신이었던 정 척은 교서관 정자를 거쳐 봉상시 주부와 감찰, 판한성부사. 수문전 대제학에 이르렀다. 1463년(세조 9) 양성지와 함께‘동국지도(東國地圖)’를 만들었다.

 정 척의 아들 정성근은 천성이 굳세고 곧았다. 성종 때 대마도에 사신으로 갔을 때 도주(島主)가 문밖에 나와서 조선의 왕명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정성근은 밖에서 호상에 걸터앉아 통역을 시켜서 끝내 왕명을 의식대로 공경히 받도록 했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성근은 연산군의 단상법(短喪法)을 어기고 친상에 3년상을 치렀다. 성종이 승하했을 때에도 3년상을 행하면서 연산군의 비위에 거슬려 갑사사화 때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

 정성근의 아들 정주신(鄭舟臣)은 승무원 박사를 역임했다. 정주신의 아우 정매신(鄭梅臣)과 정매신의 아들 정원린(鄭元麟), 정원기(鄭元麒)와 정원린의 아들 정효성(鄭孝成)이 모두 효행이 뛰어나 4대 6명의 정문이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함락되자 80노모를 업고 전남 광양군 골약면 마동리로 피난했다가 중동리에 정착했던 정대유(鄭大有)는 효성으로 유명하다. 그의 아들 5형제의 후손들이 현재 광양지방에 살면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어사공파(御史公派)의 시조 정 헌은 고려 말에 평장사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그의 장손 정 온(우곡)은 고려 말에 대사헌을 지냈으며 후에 ※우곡공파의 시조가 된다. 둘째 손자 정 택은 고려 때 감찰어사를 지냈으며 어사공파를 이어간다. 정 택의 10세손 정경세는 선조 때 대제학을 지냈다. 그밖에 ※지후공파의 시조 정 선은 고려 때 지후에 올랐다. ※내부사공파는 고려 때 판내부사를 지낸 정안교를 중조로 한다.

 해방 후에도 진주정씨는 사회 각계에 많은 인재를 냈다. 정일형은 유엔총회 한국대표와 국회의원, 외무장관, 신민당 부총재 등을 지낸 거물 정치인이다. 그의 아들 정대철이 아버지를 거쳐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세환 전 국회의원, 정헌주 전 국회의원, 정 준 전 국회의원, 정상용 전 국회의원, 정균환 전 국회의원, 정동호 전 국회의원, 정상열 전 국회의원, 정갑주 전 국회의원, 정재완 전 국회의원도 있다.

 정기승 전 대법원 판사, 정덕기 변호사, 정주영 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정정환 전 부산대 대학원장, 정운오 전 미일리노이주립대 교수, 정창훈 전 대검 검사-변호사 등도 후손이다.

 정재환(법학박사. 전 동아대 총장)과 그의 아들 정수봉(법학박사. 전 동아대 총장)도 잘 알려진 학계의 인물이다. 정수봉은 법학박사이며 명예철학박사로 동국대 교수를 거쳐 동국대총장, 부산시교육회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부산시협회장 등을 지냈다.

 이밖에도 정헌주 전 교통부장관-전 국회의원과 민정당 사무총장을 지낸 정순덕(전 국회의원), 정재각(문학박사. 전 동국대 총장, 숙대 재단이사장), 정재구(전 제일제당 사장,), 정창운(전 검찰총장), 정용식(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정동규(약학박사. 전 숙명여대 약대학장), 정상천(전 서울시장, 변호사), 정원식(철학박사, 전 서울대 사대교수), 정요한(이학박사. 전 조선대 교수), 정배기(전 광주교대 교수), 정재기(이학박사. 전 인하대 교수), 정경희(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등이 진양8정이 낳은 인재들이다.

( 언론인, 성씨 전문기자 )

언론인·성씨 전문기자 작성기사 더보기
 
 

스폰서 링크

 
고창복분자, 블루베리 농장   http://www.bokbunjablueberry.co.kr
블루베리 체험농장, 블루베리 묘목
 
 
친환경 과실원액 전문기업 베리나라  http://www.berrynara.com
아이들도 즉시 따먹을수있는 과실로 만들어 믿을수있습니다.
 
 
네티즌 의견
전체 0   아이디 작성일
 
의견쓰기
 
<나주임씨>고려 충렬왕 때 대장군 임비가 시조
황씨 원조 황락의 셋째 아들 황병고 자손으로 구성
 기사목록 보기
 
  사회 주요기사
신천지예수교회 교역자 일동 성..
주목! 이사람- 무주 적상 출신 ..
<정복규의 성씨순례-연안차씨>고..
<청송심씨>조선조 500년 정계 주..
<남원 양씨>탐라 개국설화 삼신..
‘말씀맛집’ 신천지, 성장세 연..
<연일정씨>신라 6부 촌장 중 하..
<평택임씨>고려말 세자전객령 지..
 
 
종합
주민 삶의 질 향상시킬 ‘이서문..
임실군, 농업·농촌 종합발전계..
정읍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
장수군체육회 초대 민간체육회에..
장수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모 선..
부안군, 사상 첫 국가예산 5000..
무주군의회 군정질문
모현동 발전위원회, 정헌율 익산..
망성면 기관단체협의회, 독거노..
하림, 소외계층 돕기 위한 백미 ..
전체목록
감동뉴스
현대차 전주공장 기능장회, 송년..
장수군체육회 초대 민간체육회에..
레바논 태권도 수련생, 한국에서..
마법의 性 - 여성의 명기
[칼럼] 입이 써요
신천지예수교회 교역자 일동 ..
마법의 性 - 임신이 잘 되는 ..
전주 지진규모 7.0 발생시 사..
 
RSSTOP
회사소개| 광고문의| 개인정보취급방침| 기사제보| 고충처리인
전주매일신문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노송동 승주빌딩 4층대표전화 : 063-288-9700팩스 : 063-288-9703등록번호 : 전북 아 098776발행인/편집인 : 전주매일신문
COPYRIGHT 1999 전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ISTRATOR@JJ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