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만 봐도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합니다
그깟 복숭아와 눈이 마주쳤다고 말입니다
처음엔 농담이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깎아주었습니다
포크로 야무지게 찍어 한 접시 비우려는 찰나였습니다
목구멍이 간질간질 119 빨간 사이렌 소리만 들렸습니다
-잘 깎아야지, 털이 조금 남아 있었나 봐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더니 막 두드러기가 나는 거야
-근지럽기도 하고, 죽을 것만 같아
-온몸에 발진도 일어나고
그렇게, 응급실을 다녀오고야 알았습니다
비로소 나와 다르다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평범한 믿음으로 로컬푸드를 찾았습니다
딱딱한 듯,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햇복숭아가
매대를 가득 채웠습니다
잘 익은 복숭아 서너 개가 눈에 들어옵니다
망설임 없이 시장바구니 담아 봅니다
흐르는 물에 잔털을 제거하고 기다립니다
큰 눈 부릅뜨고, 맛보기 위해 함박웃음 짓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오늘도, 근질근질 바구니 가득 털복숭아를 깎아 내어 놓습니다
행복이 입 안 가득 넘쳐흘러 터질 것 같은 날에 말입니다
‖시(詩)를 담다‖
복숭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누군가가 있다. 설마, 농담이겠지 하면서 후식으로 먹던 복숭아에 덜 깎인 털이 있었나 보다. 응급실을 다녀오고야 놀란 가슴을 쥐어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복숭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현장은 정말 짧은 순간이었다.
그 사이,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일 년 내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이 복숭아다. 그 흔한 복숭아도 도움을 받아야만 맛을 볼 수 있는 누군가를 종종 만나곤 한다. 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아무리 맛있는 것이, 귀한 것이 있어도, 손에 쥐지 못하면 다 소용없다. 이런 일이 비단 복숭아뿐이겠는가? 생선도, 고기도, 향신료도, 그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대상일 수 있다.
이처럼, 행복이란 별거 없다. 서로의 손이 되어, 입 안 가득 넘치는 터질 것 같은 함박웃음을 나누면 된다.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작은 배려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일을 깎아주는 사소한 배려가 상대방이나 집단을 움직일 수 있다. 지금은 열심히 복숭아를 깎을 때이다. 그 누군가를 위해…….
박여범 / 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