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근교에 나가 봐도 보리나 밀밭을 눈에 담기가 쉽지 않다. 밀밭을 눈에 담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염색’이다. 지금이야 다양한 종류의 염색약이 생산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녹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맥주로 머리를 감으면 노란 금색으로 변한다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실행에 옮긴 적은 한 번도 없다. 모범생도 아닌데, 평생 검은 머리만 염색의 도움을 받았다. 그 흔한 노랑머리, 흰머리, 파랑 머리 한 번 못해볼 것이다. 행동은 과감하게, 책임도 확실히, 마음은 그렇다. 

그 해답을 자연에서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대리만족’이라는 단어가 이 상황에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다 실행하면 살 수는 없다. 행복하고자 한다면 조금의 아쉬움은 남겨 두어야, 더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위안으로 삼아본다. 

박여범 / 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