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시인 '퇴근했습니다' 전문-

*긴기아남-원산지는 오세아니아 (호주), 학명은 Dendrobium Kingianum, 난초과의 상록다년초. 석곡과 매우 비슷하다. 크지 않은 꽃이 피며 대나무처럼 줄기에 마디가 있다. 이른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는 생장이 정지한다. 꽃은 분홍색과 하얀색이 있다

안방 베란다에서 추위와 싸운 긴기아남 화분을 따스한 거실로 옮겨 주었다. 그 회분에 꽃망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2일 전이다. 작년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올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꽃은 보았지만 작고 향기도 없이 짧은 시간 여행하고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더 기대하지도 않았다. 

거실로 들어서며 짧게 호흡하는 순간이다. 이 시는 우연히 눈이 맞은 긴기아남 향기에 취해 붉어진다

마스크에 잠긴 얼굴이 속삭이는 봄바람처럼 부끄럽다. 반전이다. 소복한 꽃송이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향도 진하다. 머리가 아플 정도다. 싱싱함을 출발점이 돼버린 꽃 잔치에 직장생활의 피로가 정화된다. ‘이런 것이 사는 재미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 하는, 아니,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