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사랑하다가 죽어버릴 것 같은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심장이 마구마구 벌렁거려 사랑하다가 죽어버릴 것 같다

어쩌자고 이렇게 예쁘단 말인가

어쩌자고 내 심장을 가을 가을 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인가

죽기 전에?

심장이 멈추기 전에?

수확을 기다리는 곡식을 반이라도 닮아야 할 텐데

이유 없이 딸꾹질은 멈추지 않고

침만 꼴딱꼴딱 삼키며

틈을 찾아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어쩌자고 저렇게 예쁜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정말, 이러다가, 사랑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심장이 마구마구 벌렁거려 사랑하다가 죽어버릴 것 같다

누구에게나 사랑하다가 죽어버릴 것 같은

그런 날이 있다

* 만추가경[晩秋佳景]-늦가을의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풍경 또는 뒤늦게 큰 결실을 맺음을 이르는 말.

<시詩를 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나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런데 나는 유독 가을에 시나 수필 등 다양한 감정을 글로 포장해 터트리곤 했다. 이러한 사실은 어쭙잖은 글을 모아 정리하다가 발견한 나의 새로움이라고 할까, 반가우면서도 이렇게 편식을 했던가, 글쓰기에서 말이다. 반성해본다. 그러면서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한창인 가을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교정을 거닐어본다. 기온이 내려가 춥기는 하지만, 견딜만하다. 햇살은 너무나 눈에 부시다. 모과나무 아래 떨어진 덜 익은 모과에 반사된 햇살은 싱그럽기까지 하다. 정말,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도 좋을 만큼 그런 날, 그런 날의 하루가 오늘이다. 심장이 뛰고, 이유 없이 딸꾹질이 나오고, 침만 꼴딱꼴딱 넘어가는 틈이 없는 그 날, 이런 가을을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눈에 들어오는 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이, 어쩌자고 저렇게 예쁜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정말, 이러다가, 사랑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심장이 마구마구 벌렁거려 사랑하다가 죽어버릴 것 같다. 누구에게나 사랑하다가 죽어버릴 것 같은, 그런 날이 있다?. 그대는 어떤가요?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