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을 잡았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습기에 몸과 마음이 지쳐 아무 것도 행동에 옮기기가 싫다. 새벽운동을 나서볼까 하다가 공부방을 열어 본다. 그 순간,  ’그래, 공부방 정리한다고 했지, 방학하면 말이야‘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비도 내리고, 새벽부터 궁상맞게 운동을 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대충 두서없이 시작했다. 

숨이 탁 막혔다. 선풍기를 찾아 스위치를 누르니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공부방에는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 상자부터 운동복, 테니스 라켓과 공, 각종 택배 상자 등으로 장난이 아니다. 그 누가 찾아올까 두렵다. 이것이 바로 ‘돼지우리’가 아니겠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창피한 마음이 서서히 오르내린다. 

말이 좋다. ‘공부방’이라, ‘공부방’에서 얼마나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기껏해야 책장을 넘기며 커피 한잔에, 글을 쓰는 정도로 이용된 장소다. 방을 채운 책의 화려한 잔치에는 ‘나’라는 주인공이 서 있다. 언제까지 두고 볼 일이 아니다. 더 이상 미루면 이건 사람이 아니다. 너무나 지저분한 공부방을 바라보는 두 눈은 쉽사리 어디에도 고정되지 못했다.

무엇부터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가장 눈에 띄는 상자부터 열어본다. 그리고 수백 권이 되는 책장에 둥지를 튼 책부터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책 중에서도 먼지만 가득한 10년이 넘게 펼쳐보지 않은 학회지와 참고서적을 퇴출 목록에 담는다.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책자는 내 손을 자꾸만 피해간다. 그동안 정이 들어서인지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도서관에라도 기증했으면 좋겠다.

“아니 이거 버리시려고요? 이 아까운 책을, 제가 보면 안 될까요?” 

“그래, 필요한 책 있으면, 가져가거라.

“너무 아깝지 않아요?, 아빠가 어떻게 구하고 모은 책인디……”

“과감하게 정리해서 공부방을 비우려고……”

“……”<2편에 계속>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