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이퀵, 배송 각

시인은 야구 게임과 장례 의식을 나란히 놓은 ‘보내기 번트’라는 시를 통해 객관적 시점에서 바라본 고인과의 이별을 그리고 있다. 다소 어둡고 침묵을 요구할 수 있는 시적 전개에서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계로 고민을 보내드리는 의식이 바로 ‘보내기 번트’다.

탁, 탁, 탁, 

흙이, 징허게 묻은 야구화를 

방망이로 툭, 툭 털어내며 

투수를 바라보다가 보내기 번트 사인에 

기계적으로 어정쩡하게 드리민 방망이는 

두둥실 떠오른 하얀 공보다 먼저 하늘하늘 

드론을 타고 구름 너머 일루에 퀴이퀵, 배송 각으로  

벌러덩 누워 흐드러지게 웃고 있다   -박여범, ‘번트’, 전문-

마음껏 '방망이'를 휘둘러 보고 싶은 타자, 그런 타자 앞에 1루에 나가 있는 주자, 그리고 감독의 사인, 냅다 휘둘러 '홈런'을 치고 싶은 타자의 눈에 갑자기 '보내기 번트' 사인이다. 어정쩡하게 순발력을 발휘해 드리민 방망이는 하늘을 향해 치솟고 하얀 야구공보다 빨리 1루에 도착해서 벌러덩 누워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4번 타자, 홈런, 감독의 신뢰, 인기, 환호성, 이 모든 것은 바로 '보내기 번트'에서 출발한다. 보내기 번트는 '희생'이다.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소하면서도 분명한 가치를 지닌다. '벌러덩 1루에 누워 흐드러지게 웃고 있는 방망이' 처럼, 희생적인 삶으로 아쉬움이 가득한 무엇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아니다.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이 바로 '보내기 번트'다. 지금 이 순간, '보내야!' 할 번트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내 주는 것이 어떨까? 서로 '불편하면' 그것은 '소모전'이 될 뿐이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려고’ 하지 말자. 보내기 힘든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벗어 던져 버리자. 미련은 미련을 키운다. 그 미련의 노예가 되는 것을 떠나보내는 이도 원치 않을 것이다.

시퍼렇게 멍들어도 어쩔 거여 허옇게 살아야지

장다리꽃, 시리다. 

-‘내 삶에 무꽃이 피었다 하여 텃밭에 나가보니’, 위의 책, 15쪽. 전문-

시퍼렇게 멍들어도 좋은 삶이 우리에게 있다. 주어진 삶을 비관하거나 타인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자.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에 빠지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 눈물을 거두자. 눈물 대신 희망을 준비하자. 감사함으로 삶을 살아내자. 지는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 보면, 우리 모두 활력 넘치는 파이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상과 같이, 우리 주변에는 이름을 불러 주지 않으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소중한 것이 많다. 너무나 ‘익숙함’으로 ‘당연함’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하거나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다볼 시점이 아닐까? 박주용 시인의 시집 지는 것들의 이름 불러 모며 통해 고향에 대한 잔잔한 그리움이 지워지기 전에, 떠나기 전에 후회하지 말고 이름을 불러 보자. 

충북 옥천 청산에서 태어난 박주용 시인은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건양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1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시 부문)로 등단했다. 고향 이웃 마을 형님의 시는 서정적인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감사한 것은 고향 선배님이자 내 친구 박원용의 형님이신 박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작품마다 다가오는 어슴프레한 그리움에 빠져들게 한다.

박여범 / 용북중학교 교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