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숨을 돌리고 4월을 맞이할 무렵, 느닷없이 교육청 특정감사를 알리는 전화를 받고, “억 뭐야? 왜” 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어찌어찌 감사를 마무리하고 5월 말 3학년을 시작으로 2학년 1학년이 6월 초에 모두 학교에 오게 되었다. 

7월의 막바지다. 천둥소리가 요란하고 교정은 시험으로 조용하다. 장맛비가 멈출 줄 모르고 쏟아붓는다. 2층에서 바라본 매내천은 온통 황톳빛이다. 평상시 졸졸 실개천이었던 그가 거대한 강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돌다리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작은 다리 하나도 불안하다. 강물이 범람할 지경이다. 

투덜투덜 잰걸음으로 

가락가락 걷다 보니 시험감독 시간

후다닥 정신을 부여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름 모를 수학 공식 

무덤에 휘말려 써 내려간 

문제 풀이는 엇갈려 돌아가고

오늘도 호올로 나다움을 찾아 

마중 나가면

수많은 물음표가 별이 되어 

하늘을 수놓는다.       

-박여범, ‘나다움’ 전문-

2교시 시험은 수학이다. 녀석은 창가에 앉아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선택형 문제는 끄적끄적 풀어간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볼펜을 내려놓는다. 그런데 녀석은 너무나 편해 보였다. 그래도 무엇이라 말을 할 수 없어 바라만 보았다. 시험지 한 번 보고 한숨 쉬고, 창밖을 한 번 바라보고를 반복하는 녀석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저 아이가 아파할 시간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음에 가슴이 미여 왔다. 

시험도 결국은 성장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과 싸움이라는 결론에 이르자 슬퍼졌다. 내가 녀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험감독이 부족하여 교장, 교감이 투입되어야 하는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교실 현장은 평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사랑의 장소와는 거리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일까? 교감이라는 지위를 통해 나답게 녀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나의 일방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녀석을 어쩌면 편안하게 그 분위기를 즐기면서 초,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신 있게 행동하는 것, 그룹의 흐름에 녹아드는 것,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주변을 무시하고 독불장군으로 살아내는 것 그 어는 것에도 나다움, 나답게 사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아도 자연이라는 거대 무시한 흐름 속에 나다움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결론은 사회적 지배 속에 그 흐름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너무 튀지도, 너무 뒤처지지도 앞서가지도 않는 진정한 나다움, 나답게 사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기준으로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