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그런데 문제는 친구 근영이란 놈이다. 절친인 놈은 다정스럽게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며 잠을 깨우지 않고, 가장 싫어하는 장난치듯 물을 머리에 찌끄리고 있다. 아무리 친한 친구이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것은 당연하다. 친한 것은 그 다음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밥을 먹으러 가자는 것이다. ‘안 먹는다고’, ‘꺼지라고’ 했는데도 빈둥빈둥 비웃으며 약을 올린다.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나의 주먹이 근영이의 얼굴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이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 상옥이가 달려와 말려댄다. 나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더 큰 소리로 역시 ‘안 꺼져’다.

친한 친구 근영이도, 상옥이도 ‘안 꺼져’란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이유도 없이, 마냥 싫어서 ‘꺼지’라고 했다. 그 이유는 ‘애들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영이도, 상옥이도 화자의 눈만 보면 다 안다는 듯이 태연하게 밥을 먹으러 가는 장면이 그려지는 시적 상황이다.

‘눈만 봐도 다 알아’라는 시의 제목처럼, 근영이도 상옥이도, 주변의 친하지 않은 친구도, 다수의 독자에게도 주먹을 날릴 수밖에 없는 시선이 화자에게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기 싫었는데’, ‘나는 정말 그러기 싫었는데’ 말이다.

이 시에 공감하는 불특정 다수는 ‘나’는 ‘너’가 왜 그랬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래서 ’너‘를 이해하고 기다려 주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아프다 못해 가슴이 시려 온다. 가슴이 시려오면 올수록 조금 더 가까이서 시의 화자에게 귀를 기울여진다. 

근영이와 상옥이처럼 우리는 ‘너’에게 ‘밥’은 대화이며 소통의 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꺼지고 싶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도, 친구와 조잘조잘 소통할 수 있는 짧은 ‘웃음의 순간’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물’은 아니지? 내가 ‘꺼져’라고 한 이유를 근영이, 상옥이, 지켜보던 애들도 알고 있겠지? 나만의 착각은 아니겠지?

이처럼, 현실에 순응하는 척하며 살아가는 ‘나’와 근영이, 상옥이, 지켜보던 애들도 항상 기쁠 수만도, 슬플 수만도, 그저 그럴 수만도 없는 것이 삶이다. 그래서 더욱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이것은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너’도, ‘나도’, ‘우리도’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내고, 화나면 화내고, 노래 부르고 싶으면 노래하고, 허공을 향해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를 지르고,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 싫더라도, 정말 그러기 싫더라도?

박여범 / 용북중학교 교감·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