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아빠, 벌레 먹었는디, 이것 먹어도 될까요?”

“그럼, 얼마나 맛있다고, 원래 벌레가 맛있는 것만 먹는다고 하잖여? 니, 안 먹으려면 아빠 주구?”

약간의 흠만 있어도 제 가격을 받지 못하는 과일도 과일이다.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는 말처럼 소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과일이다. 가난했던 아버지는 늘 상처가 나 있는 사과나 배를 깎아 드시곤 했다. 정말 제대로 된 과일을 구경하는 것은 설날과 추석뿐이었다. 

사과를 헤집고 헤집는 드라마 숨바꼭질 벌레처럼

영화 속 희미한 전등에 칼날의 변덕스러움 더해가고 

어설픈 몸짓에 이리저리 덧없는 피난살이도 지치고 지쳐 

아사삭, 사과 한 입에 목구멍 가득 퍼져가는 달콤한 전율 

알 수 없는 정거장에 내리지 못한 행복한 외침에 아직도 

주저주저 뱃속을 꿈틀거리며 벌레들의 미친 여행이 한창이다   

-시인 박여범 ‘사과를 깎으며’-

사과를 깎으며 아버지를, 고향을, 형제들을 생각하는 짧은 시간이 싫지 않다. 

왜냐하면, 사춘기 시절 난 가난하고 힘들게 사시는 아버지가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7남매 중 여섯째인 나는 모든 것에서 항상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형은 형이라고, 동생은 동생이라고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가운데 끼인 나는 늘 형이 사용하던 가방이나 신발 교복까지 물려받아야만 했다. 지금이야 ‘허허’ 웃어 넘길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리도 서러웠는지? 모른다. 

사과를 깎으며, 찬찬히 생각을 정리해 본다. 나를 쏙 빼닮은 똑같은 자식을 키워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주었던 그 사랑을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다. 말없이 사과만 깎으시던 아버지의 진한 슬픔에 마음이 짠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슴 깊이 다가왔던 아버지의 사과 깎던 그 시간이 그립다. 

나는 오늘도 멀쩡한 사과가 아닌 벌레가 먹다 남은 사과를 깎아 입에 넣기 바쁘다. 모양도 예쁘지 않지만, 향과 맛은 일품이다. 내가 만족하고 맛있으면 최고다. 주변의 시선이나 입맛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식들을 위해 깎으시던 아버지의 사과와 볼품없고 내세울 것 없는 과일처럼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