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다. 누구나 흘러가는 시간 속에 아무 얼굴 없는 덫 없는 군중으로서 사라지길 원치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자기 자신다운 사람,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과연 정치권에서는 그런 요구에 자신이 있었던가. 솔직히 어느 정치인들도,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오로지 그들의 유리한 기득권만을 사수하는 형태가 측은하기까지 하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 자신의 연약한 정체성 속에서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위태롭게 흔들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느끼는 집단적 아집과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그들의 이익만을 명분에 숨겨둔 정치인들을 많이 보았다.

근래에 들어 꽤 들끓게 된 움직임 중에는 정체성 표현을 일종의 정치적 운동으로 확장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를 정체성 정치라고도 부른다. 위태롭고 불안한 사람들이 정체성 정치에 많이 몰렸다.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연약함을 가진 이들과 뭉쳐서 서로가 서로의 용기라고 말하며, 그 연약함은 도리어 강함이라고 외쳤다. 또 자신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외부인들을 원망하며 가슴 속에 투쟁하는 자아상을 심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정치인들과 언론을 망라한 모든 기득권층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자기 모순적 이중성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안에서 더 이중적인 모습으로 명분 뒤에 숨어 기득권을 과시할수록,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이 뚜렷해진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를 할퀴고 상처 입히는 갈등의 정체인 것 같다.
그 중심에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있다.

정말 화가 나는 이유가 뭐냐면, 충남 아산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사고 사망사건에서 가장 끔찍하고 안타까웠던 것이, 사고가 날 당시 피해 아동의 어머니와 동생이 길 바로 건너편에서 사고 장면을 다 목격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분들은 그런 충격과 아픔을 겪은 것도 모자라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 국회에서 꼭 통과되어야 하는 관련 법안이 정치적 거래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마저 눈앞에서 목도하고 만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에 있을 수 있는 일정한 거래와 협상의 과정과 그 당위를 모두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편이다. 그러나 자녀를 눈앞에서 잃은 슬픔에 더해 다른 자녀들의 목숨이 정치적 거래의 판돈으로 올라가는 그들의 형태를 이 분들께서 또 보시게끔 만들었어야 했던 것인가. 그렇게들 의석이 중요하고 내년에의 그 알량한 정치적 생명 연장이 중요했나. 아무리 거래를 한다고 해도 민주주의 국민국가의 정치인이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이 죗값을 다 어찌 치르고 갚으려고 그러는 것인가?

그러나 "한국 총선 전에는 북미회담 열지 말아 달라.", "선거법 상정하지 않아야 민식이법 통과시켜 주겠다." 국가안위보다도, 세계평화보다도, 아이들의 생명보다도, 자기들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 집단이 있다. 나는 도저히 이들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없다.

곽보경 / 칼럼니스트 겸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