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점심시간, 녀석과 운동장을 거닐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녀석은 아주 자연스럽게 거부감 없이 대화에 응해주었다. 녀석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기본 생각으로 수업에 대한 태도와 학습 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녀석은 방과후학교에 참여하지 않고, 종회가 끝나기 무섭게 자동차로 학원도 아닌 과외를 받기 위해 부모님의 픽업 차량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며칠 후, 녀석이 나를 찾아왔기에 영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녀석은 주저함 없이 불쑥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차분하게 설명을 마친 녀석의 입에서 조용하게 던져진 한 마디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여범 선생님, 제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

“바로, 가장 행복한 시간이 학교생활이에요. 편히 잠을 잘 수도 있고, 아이들과 웃으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 학교거든요? 선생님은 제가 잠자고 놀기만 하니까 미워하셨죠?”

“그랬구나. 마음이 아프다. 진작 선생님에게 털어놓지 그랬니? 그 무거운 것을 왜 혼자 짊어지려고 하니? 선생님이 친구가 되어줘도 될까?”

“정말요?”

“그럼, 언제든 찾아오길…….”

녀석을 보내고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녀석의 현실은 대다수 아이가 부러워하는 조건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도 15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다. 그래서 녀석이 짊어지고 있는 멍에가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그래도 나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을 해결하고, 학교를 감옥이 아닌 행복한 삶을 저축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태도에서 녀석의 희망을 보았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녀석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헤어짐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지만, 늘 녀석과 함께 있다고 믿고 싶어졌다. 녀석이 언제나 달려와 “여범 선생님?”을 부르면 함박웃음으로 함께 할 있게 말이다. 녀석 주변에 “00야”, “00 선생님”, “00 형”, “00 누나” 등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무한한 그들이 함께하면 욕심일까? 그럴 것이고,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박여범 / 용북중학교, 시인,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