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은 메모에 소홀해서 낭패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메모가 소중하고 필요한 지도 모른다. 암기력이 아무리 좋아도 메모를 하는 사람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마냥 웃었던 날‘, ’울었던 날‘, ’기대하게 하는 날‘에 종종 밑줄을 치다 보면, 어느새 한 해가 저문다. 이처럼, ’기억할 수 없을까 봐‘ 사람들은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한다, 

임영석 시인의 ‘밑줄’이라는 시는 ‘혹시나 잊어버려, 기억할 수 없을까 봐’라는 1연의 1, 2행에서부터, 3연 6행 ‘한 세월이 다 간다’ 까지 ‘기억’과 ‘잊고 사는 많은 것들’의 공감에 한 표를 던지며 ‘밑줄 긋기’에 빠져들게 된다.

혹시나 잊어버려/기억할 수 없을까 봐/ 살면서 아름답고/슬픈 날 밑에다가/붉은색 밑줄을 친다/잊어버리지 말자고

그 밑줄이 다 지나가면/한 해가 다 지나간다/웃었던 날 울었던 날/밑줄 속에 다 감추고/사랑한 사람 가슴에/밑줄 하나를 더 그어본다

날마다 그 밑줄 속에/그리움도 담아두고/별빛 같은 情을 담아/끝없이 기다리면/밑줄친 그날들 지나/한 세월이 다 간다                    -임영석 시인 ‘밑줄’-

 

학창시절, 졸음이 밀려오는 5교시 수학 수업이 유난히 많았던 기억이다. 교사가 된 현장에서는 시간표 편성에 있어 가능하면, 국, 영, 수 주요교과는 학습효과를 위해 오전에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 예체능이나 기타 교과 선생님들은 불만이 있어도 묵묵히 협조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꼭 5교시가 수학이었던 나의 고교 시절 시간표는 아마도 졸리는 시간 가장 어려워하는 교과목을 배정하여 수업에 집중하도록 배려한 선생님들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음을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 수학 시간 졸음과의 전쟁보다도 앞서는 것이 있었다. 문제를 푸는 것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것은 선생님이 나눠주신 족보를 암기하는 것이었다. 그 부분을 암기하지 않으면 문제를 풀지 못하였다. 주로 문제를 풀기 위한 공식(‘밑변X높이÷2=’)이 대부분 밑줄을 긋는 대상이었다. 지금의 선생님의 존함 석 자도 가물가물하다. 그 시절, 조금만 더 열심히 밑줄을 그었다면, 그리고 암기했다면 지금보다 수학에 더 자신감이 생겼을 텐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학 시간 정말 열심히 밑줄을 그었던 것도 ‘기억할 수 없을까 봐’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