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는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열여덟 살, 청신한 얼굴이다.
영화제를 바라다보면 내가 전주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가는 영화제 날짜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전주국제영화제 속에 있다. (시인 겸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수필 ‘5월’ 패러디)

오는 6일까지 이어지는 전주국제영화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영화계의 피톤치드 같은 독립·대안영화들이 줄지어 영화팬들을 기다리고 있다. 징검다리 황금연휴, 무작정 전주로 향하는 건 어떨는지.

5월 1일 ‘근로자의 날’ <인류의 상승>
<인류의 상승>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구직 의사가 없거나 일이 있어도 그 일에 큰 뜻을 품지 않고 인터넷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청년들, 엑스·알프·아키의 에피소드.
영화는 각기 다른 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인과관계가 없는데도 묘하게 연결 된다. 글로벌 자본주의 아래에서 신음하는 노동의 조건, 불통의 시스템, 관음의 테크놀로지, 존재의 불안 등을 소재로 한 영화는 젊은 세대들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3일 ‘석가탄신일’ <비구니>
1984년 불교계의 요구로 제작중지 됐던 임권택 감독 <비구니>의 부분복원판.
<비구니>는 송길한 작가의 각본 가운데 5분의 1 정도 장면들을 촬영했을 무렵, 불교계가 비구니의 명예 실추를 이유로 대규모 시위와 소송까지 벌이는 바람에 제작을 중단해야 했다. 작품은 출가한 여인의 번뇌, 구원을 향한 일생의 여정을 담았다.

5일 ‘어린이날’ <이반 차레비치와 공주>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영역을 개척한 미셀 오슬로의 신작은 동화와 시적 이미지의 환상적인 결합을 보여준다. <이반 차레비치와 공주>는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은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두 명의 아이, 한 소년과 소녀가 극장에서 낡은 영사기를 발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들의 기이한 상상력에서 네 개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전설의 괴물들, 황금 열매가 열리는 나무, 마법사와 해적, 왕과 왕비, 고양이, 쥐, 그리고 말. 환상 세계의 캐릭터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같이 휘황한 장식과 정교하게 조각된 실루엣 그림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8일 ‘어버이날’ <버블 패밀리>
<버블 패밀리>는 1980년대 도시 개발의 붐을 타고 부동산 투자에 인생을 걸었던 감독의 부모님의 일생을 다루면서 한때 벼락부자가 되었으나 과다 투자로 인해 부도를 맞으면서 IMF외환위기 이후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진 한국형 중산층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적 다큐멘터리.
거품처럼 꺼져버린 부자에의 열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부동산 투자에 매달린 감독의 부모는 15년 째 월세 집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감독은 대책 없는 그의 부모님을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본다. 살고 있던 월세 집에서 나가야할 상황에 처해서도 기약 없이 부동산 투자에 매달리는 그의 부모를 보며 감독은 개발신화에 매달렸던 한국사회의 탐욕을 드러내 보인다.
/정해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