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깡패와 굿패 2부 '굿패와 무당'(4) - 당골래와 재비
가-
가+
“내일 모레 도산에서 당산제가 있다는데, 너도 올 거니?”
집으로 돌아오면서 명희가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가야지. 나는 아버지가 장구를 치면서 춤추는 게 너무 멋있어. 헤헤헤.”
두 아이가 걸어가며 남긴 발자국 위로 분설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강남준과 박명희는 무장면 월림리에 속한 마을에 살았는데, 남준은 무장읍과 가까운 봉림마을에, 박명희는 봉림에서 1킬로미터 쯤 떨어진 황전마을에 살았다. 봉림은 강 씨들이 주로 살았고, 황전은 박 씨 성을 가진 집들이 많았다.
남준이 명희와 헤어져 막 집으로 들어갔는데, 토방에 신발 여러 켤레가 놓여 있었다. 문밖에서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하자 안방 문이 열렸는데, 방안에 명희의 아버지 박규환과 어머니 연기댁의 얼굴이 보였고 그들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남준은 박규환과 연기댁에게 고개를 넙죽 숙여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방금 명희와 헤어졌는데 데려올까요, 하고 물었다. 남준의 어머니 신동댁이 나서서 어서 데려오라고 하여 남준은 뒤돌아서 달려나가 명희를 불러왔다.
“배고플 텐데 왜 이제야 와. 추운데 어서 들어와라.”
남준의 아버지 강병도가 남준과 명희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라.”
신동댁이 부엌으로 나갔다. 남준의 눈은 자연스럽게 밥상으로 돌아갔는데, 시래기 된장국에서 구수한 냄새가 났고 시원한 동치미도 침샘을 자극했다.
남준보다 세 살 어린 여동생 남주와 네 살 어린 박명희의 남동생 명철도 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신동댁이 어느새 고봉으로 보리밥을 담은 사기밥그릇과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시래기 된장국을 들고 들어왔다.
“어서 먹어라. 얼마나 배고파.”
남준과 명희는 부리나케 상으로 달려들어 숟가락으로 보리밥을 가득 퍼서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두 부부가 잠시 수저질을 멈춘 채 흐뭇한 미소를 얼굴에 담고 두 아이의 밥 먹는 모양새를 바라봤다.
“꽹매기(꽹과리)하고 쟁(징)은 잘 있겠지?”
“광목으로 잘 싸서 소금하고 숯을 같이 넣은 가마니에 담아서 저 광 바닥을 파고 묻어놓았는데 어제 파보니까 괜찮더라고.”
“이놈의 전쟁이 언제 끝날는지 원.”
“구시포쪽하고 영광 홍농 해안에 토굴을 팠다는 말이 있던데, 무슨 해안포를 보관한다고.”
“미국 비행기가 여기까지 날아오는 걸 보면 흘러가는 전황이 일본 놈들에게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좋은 상황이 아니니까 굿패들한테서 꽹매기나 쟁을 빼앗아가지. 무기를 만들 쇠가 없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어.”
“어째든 내일부터 하는 도산마을 굿이 아무 탈 없이 잘 되어야 할 텐데 말이야.”
“우리 집사람도 그렇고 연기댁도 열심히 치성을 드렸으니 별일은 없을 거야.”
남준의 아버지 강병도와 어머니 신동댁, 명희의 아버지 박규환과 연기댁은 내일 있을 굿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모양이었다.
신동댁과 연기댁은 당골래였으며 강병도와 박규환은 당골을 보좌하는 재비였고, 굿패에서 활동을 했다. 강병도는 굿패에서는 주로 장구를 다뤘고, 재비일 때는 피리나 새납을 담당했다. 박규환은 굿패에서는 북을 담당했고, 역시 재비일 때는 다른 악기들을 연행했다.
신동댁과 연기댁의 가계는 정읍 입암과 고창읍에서 오랫동안 당골을 이어온 집안이었고 딸들인 그들은 자연스럽게 무업을 계승했다.
강병도와 박규환의 집안도 역시 당골로 내려온 집안이었다. 이들은 정월 열사흗날부터 시작되는 월림리 서북쪽에 잇대어 있는 송계리 도산마을에서 연행되는 당산굿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Copyrightⓒ전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