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원래 닭이나 돼지를 사육하던 축사가 대부분이었는데 폭설로 낡은 축사가 무너지니까 아예 다 철거를 하고 마을을 새롭게 바꾸려 하는가 봐요. 저기 저분이 이장인데, 몇 년 전에 어제 봤던 강루이자 수녀님 때문에 이 마을로 귀촌해서 마을 이장 일을 하고 있다는 군요.”

“그 외국수녀가 뭘 어떻게 했기에…….”

“40년 전부터 이 마을에 들어와 이곳에 있던 한센인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본 것이겠지요.”

 

“그 수녀는 아직 안 나온 모양이네요. 어제는 여기서 일을 하더니.”

 

“곧 나오시겠지요. 허허허.”

보호관찰관은 철거현장으로 걸어갔고 동식도 그를 따라갔다. 어제와 같은 작업이 진행되었고, 역시 잠시 후에 성당에서 강루이자 수녀가 나와서 일손을 보탰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마을 어르신 병원 가는 날인데……,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루이자 수녀가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동식과 눈이 마주쳤다. 일꾼 중에 가장 덩치가 좋아보였기 때문이리라. 동식이 도와줬으면 하는 눈빛이었다. 

사람들이 힐끔 동식을 쳐다봤다. 어서 수녀를 따라 나서라는 무언의 표정들로. 동식은 손을 털고 루이자를 쳐다봤다.

 

“내, 내가 갈게요.”

 

“그래줄래요. 호호호. 할머니를 봉고차에 태워주면 돼요.”

동식은 루이자를 따라갔다. 수녀는 낮은 언덕에 위치한 성당으로 올라갔다. 수녀의 걸음이 절뚝거리듯 뒤뚱거렸다. 다리가 안 좋은 건가. 

수녀는 성당 옆 창고로 보이는 건물의 문을 열었다. 천장도 낮고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도 좁아보였다. 

창고라 예상했는데 수녀가 머물고 있는 주거지인 모양이다. 좁고 낡았지만 단출한 가제도구가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잔잔한 뭔가가 물결이 되어 동식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시는 거예요?”

동식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질문이 나오고 말았다. 

“예, 아주 좋은 집이에요. 항상 하느님께서 함께 하고 있으니 정말 좋은 집이지요, 호호호.”

동식은 무슨 말인가를 더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강 수녀의 눈을 피했다. 

거처에는 한 사람이 들어서기도 좁은 주방이 있었고 그곳에 어울리게 작은 식탁과 그에 걸맞은 작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조리 기구나 그릇들도 모두 오래되어 보였지만 가지런하면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신발장에 놓인 신발은 몇 켤레 되지 않았는데 모두 뒤축이 닳고 낡아보였다. 식탁에 놓인 물건 중에 동식의 눈을 끄는 게 있었다. 

연필이었다. 연필은 모두 몽당연필이었는데 손가락 두 마디보다 작은 크기였다. 저 작은 연필로 글씨를 쓰는 것인가. 

이태리에서 왔다고 했는데,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와서 이런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동식은 강 루이자 수녀의 삶의 궤적이 궁금해졌다. 

루이자 수녀는 자동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성당 마당 한쪽에 낡은 봉고차가 서 있었다. 

“제가 운전할까요?”

동식의 입에서 저절로 나온 말이다. 전혀 동식답지 않은 행동이었고 제안이었다. 

건달은 남에게 위세를 부리는 건 익숙하지만 돕는 건 낯설다. 건달은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협박하고 으름장을 놓아 먹을 것을 강탈해서 제 배를 채우는 하이에나다. 

지금 하는 동식의 행동은 그런 하이에나가 취할 자세가 분명 아니다. 동식의 마음 어딘가에도 누군가에게 나눠줄 동정 같은 것이 있긴 있는 건가. 

루이자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이 차는 나밖에 운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봉고차는 수동이었다. 기어를 넣는 손짓이 정교하지 않으면 기어가 들어가지 않았다.